한국교계뉴스 1 페이지

본문 바로가기
?>

교계뉴스

  • 21
    [한국교계뉴스] [최선 칼럼]독서는 인생의 스승 미주교회신보2024.05.05
    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시인작가 최선 박사  지구촌 곳곳에서 가정의 달을 맞이하는 소중한 독자들의 부부와 자녀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이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매서웠던 겨울을 지나 나무의 새순이 돋아나는 봄을 맞이했다. 온통 초록으로 물들인 봄, 인간만의 특혜인 책 읽기가 독자들의 생활에 스며들기를 바란다.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의 삶을 면면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혼자서 사색하고 기도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처칠, 루즈벨트, 링컨과 같은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으로 큰 유익을 얻었다고 고백했다.나 홀로의 시간은 고독의 시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일을 추진하는데 참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에서 최소한 30분 이상 독서의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한층 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사람들은 독서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대부분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압박감이 더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책을 손에 다시 잡기가 두려워하거나 애독이 어려워질 뿐이다.과제로 여겨 일독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읽기로 한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작가들에 의해 지금 이 순간에도 넘쳐나고 있다. 그 중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 특히 나에게 더 의미 있는 책은 소수일 것이다.완독에 대한 부담감을 버리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를 유지하는 것이다. 목적을 위한 독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사람은 사실 그렇게 의지가 강하지 못해서 목적만을 위해 행동할 수 없다. 독서에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재미가 있어야 독서도 즐거운 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는 자유, 책 읽기의 즐거움도 있지만 책 읽기의 괴로움도 있을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책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스르륵 읽어내는 책들도 있지만 행간 속을 줄치며 노트 정리하며 그렇게 분석해가며 읽는 책들도 있다.독서는 가볍게 시작했다가 무겁고 단단해지는 것, 그것이 책의 방향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조금 편안하게 책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것은 한 템포 쉼을 주기도 한다. 어디에 메이는 것보다는 즐거워할 수 있는 독서의 행위로 지속된다면 좋겠다. 완독도 좋지만 쉬었다가 다시 잡을 수 있는 그 여유로움, 그때는 또 다시 어렵던 행간이 새롭게 읽혀지기도 하는 기쁨과 행복, 만족이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책을 읽는 방향과 목적은 여러 가지인 듯하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야하는 좋은 책은 충분히 인생의 스승이 되어 준다. 특정한 것에 메이다보면 스스로의 굴레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 독서가 아닌가 싶다.사색하며 자신의 책을 발견해 낸다는 건 큰 기쁨이고 그것이 나를 다스리며 함께 우리와 동행되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큰 행복일 것이다. 독서는 나의 자아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 미소가 흘러나오게 한다. 의무적으로 독서할 이유가 없다.그런 독서는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독서는 시험공부와 다른 것이다. 하지만 책 읽는 좋은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당분간은 자신을 혹독하게 훈련할 필요는 있다.필자는 16세기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녹스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많은 책들을 의무감으로 정독하고 속독을 했었다. 원서를 읽으며 종종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후에 독서습관이 몸에 배여 이제는 자연스럽게 즐기는 다양한 독서가 가능해졌다.대한민국 국민들 중에 일 년에 책 한 권을 읽는 사람이 적다는 말들을 한다. "한 권의 책은 나의 충실한 친구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즐기는 독서가 되기 위해 책 읽는 습관을 길들이는 것은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다.그렇다면 오늘부터 우리 모두가 책과 함께 보리밭 사잇길로 사색하는 마음의 여유로 녹색의 싱그러운 봄을 즐기며 최고의 멋진 내일이 되기를 기대한다.
    Read More
  • 20
    [한국교계뉴스] [최선 박사 칼럼] 미주교회신보2024.04.22
    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 최선 박사  강대국들에 의한 식민지 확장과 강력한 개방 압력으로 조선은 망국의 길에 있었다.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변화를 주려고 했으나 1897년부터 1910년까지 13년간의 대한제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그 중심에 태어나 자라고 애국심으로 불탔던 안중근 의사를 다시 한 번 조명해 보면서 자유대한민국이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되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통하여 자유국가로 건국되고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한 현실에서 국민들이 가져야 할 나라사랑에 교훈과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독립운동가 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읍에서 태어났다. 그는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모함을 받아 서울을 떠나는 부친을 따라 여러 곳으로 방랑하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부친의 애국정신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나라와 민족을 구하려는 큰 뜻을 키웠다. 청년 시절 안중근은 서양의 발달된 문화와 접촉을 하면서 계몽 교육으로 나라를 찾으려고 하였다.1905년에 초대 한국 통감이 된 이토 히로부미는 1907년 정미년에 조약을 맺자 황제를 폐하고 조선군대를 해산시켰다. 북간도로 들어가 의거를 일으킬 것을 결심한 안중근은 가족들과 이별하고 용정의 명동에 자리를 잡고 무예를 익혔다.그러나 여기서도 의병양성이 어렵게 되자 다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으로 갔다. 이곳에서 반일 의병장 이범윤을 만나 함께 창의회 이름으로 30만원의 군자금을 모으고 수많은 청년들을 모집하여 연추지방에서 1908년부터 군사훈련을 진행하였다. 안중근은 의병대장 전제덕 부대의 우군령장을 맡고 경홍의 고간원과 회령의 신간원 등지에서 일본군을 습격하였다.하지만 그해 7월, 신간원 전투에서 큰 손실을 보아 부대는 궤멸되었다. 그래도 의지를 꺾지 않은 안중근은 1909년 봄,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 5적을 처단키로 맹세했다. 7인 단지동맹을 맺고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며 독립을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1909년 10월 26일 아침 일찍 하얼빈역 대합실에서 긴장한 마음을 달래며 대기하고 있던 우덕순이 성사할 기회를 놓치자 자기 외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사람이 없음을 실감한 안중근의 마음은 무거웠다. 거사를 실행하기 위해 신한촌에서 땀 흘려 준비한 일, 손가락을 자르며 맹세하던 일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오전 9시에 오래전부터 사진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를 기억한 안중근은 그의 등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가 하얼빈역에 울려 퍼졌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은 태연하게 품속에서 간직했던 태극기를 펼쳐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안중근은 로씨야 헌병에게 체포되어 일본사령관에 인계되었고 여순 감옥에 감금되어 갖은 악형과 심문을 받았다.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세계에 널리 퍼졌다. 1910년 4월 16일 영국신문에서 세계적인 재판의 승리자는 안중근이었다. 그는 영웅의 월계관을 거머쥔 채 자랑스럽게 법정을 떠났다. 그의 입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략했다고 보도했다.중화민국을 창립한 존중산은 “안중근의 공적이 삼한과 만국을 돕고 백세와 춘추에 빛나리라”고 했고 1931년에 일본에서도 ‘안중근 의사’란 연극 공연이 있었다. 전 흑룡강성의 장수 천레이는 “안중근은 내 맘속에 애국열정의 불을 지펴주었다. 내가 항일혁명투쟁에 나선 계기는 안중근을 숭배하고 따라 배우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15분에 안중근 의사는 나라의 독립을 기도하며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그는 최후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 되거든 고국으로 가져다 안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이 된 의무를 다하며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은 32살의 젊은 나이로 민족독립의 성스러운 싸움에 생명을 바쳤다.대한제국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권이 박탈당하고 급기야 일본제국에 의하여 한일합방으로 쓰라린 망국의 길에서 일본군과 투쟁하며 목숨을 다해 헌신하신 애국자들의 나라사랑을 배우자. 멀지 않아 남과 북이 평화통일이 되는 그날에 한민족의 동포들이 얼싸안고 기뻐하며 살아갈 그 날이 한 걸음 더 가까이 왔음을 기억하고 오늘과 내일도 자유대한민국 우리나라를 사랑하자.
    Read More
  • 19
    [한국교계뉴스] [논평] 삼백만운동본부, 총선과 역사적인 중요성 미주교회신보2024.04.05
     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시인작가 최선 박사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재외국민과 국내 국민들은 사전투표 선거로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본 투표가 진행된다. 자유대한민국에서 투표하는 국민이 진정한 애국자이며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반드시 참여해야 할 것이다.무엇보다 입법부가 건강하려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나라의 정치 발전을 위하여 희생하고 섬기는 헌신의 봉사정신이 있어야 한다. 애국심이 강하며 분명한 국가관을 가진 능력 있는 자가 당선되어야 한다. 국가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 선출되어야 4년 동안 국민을 섬기는 진정한 국회의원으로서 임무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이처럼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총선과 시대적인 국가의 긴급함을 인식하면서 삼백만운동본부(상임대표 최선 박사)는 다음과 같이 국민들과 함께 진지하게 생각하며 바른 행동으로 나아가자.   1. 정치적인 안정과 견고한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바른 선택을 하라.이제 선거가 끝나면 우리나라의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가 결정이 난다. 혼돈으로 치닫게 될지, 아니면 안정과 견고한 자유대한민국을 세워갈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에서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해 주면서 참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이번 22대 총선은 참여, 공정, 화합을 위하여 한 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거가 되어야 하겠다. 그렇게 되어야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2. 국민들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행동하라.지역구 혹은 비례대표로 그리고 여러 위성 정당들이 공약을 앞세워 자신들을 선택해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중차대한 위기의 순간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애국하는 국민들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행동으로 주권을 준수해야 한다.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발전과 정쟁에 관한 뜨거움은 계속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어떠한 결과가 나왔든지 간에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 그들은 국민화합을 위해 앞장 서야 할 것이다.   3. 전쟁 중 해외에 있는 자국민들의 안전과 우리나라에 미칠 악재를 사전에 차단하라.지구촌 한편에서 아직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그리고 레바논과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무장 군들과 전쟁을 하고 있다. 대만에는 대지진으로 거대한 피해를 보았고 사회적으로 국민들이 고통 중에 있다. 이를 위하여 도울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고 국가와 민간인 차원에서 직간접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국제 정세를 감안하여 외교적인 밀접한 소통을 가지고 해외에 있는 자국민들의 안전과 우리나라에 미칠 악재를 사전에 차단하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외의 세계에도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지구촌에 평화를 위협하는 각국에서는 전쟁 중지와 철군을 염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동과 나토군 개입과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대폭적인 포격을 가하고 있으며 양측의 교전으로 국가 시설과 선량한 백성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4. 다양한 시대 속 강대국들의 열강들의 외교, 국방, 정치적인 강화를 통해 대처하라.세계 역사에는 19세말과 20세기를 거치면서 세계열강들이 약소국들에게 정치, 경제, 문화, 외교, 종교 등의 이유를 내세워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렸다. 우리나라도 일제치하에서 36년의 국권 상실의 아픔을 잊지 않고 있다.특히 일제강점기 기간 동안은 말로 표현 못할 끔찍한 찬탈이 있었으며 말과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분하고 강제노동과 최소한의 인권은 말살된 채 태평양전쟁의 총알받이로 징집되는 큰 아픔을 겪게 되었다. 심지어 일본 총독부에서는 우리나라의 고유문화 풍습을 왜곡하고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었고 한글사용을 금했으며, 일본어를 배우게 하는 등의 문화 말살의 정책을 강력하게 감행했다.   5. 건국 자유대한민국의 가치와 헌법정신을 바로 세워 공산화와 사회주의를 막아라.건국 당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들은 북한과 다른 자유민주의를 선택함으로 지금의 번영을 가져 올 수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사수하고 진정한 자본경제체계, 평화통일이 오기까지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펼쳐 가야만 할 것이다.미국, 소련이 중심이 된 2차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말미암아 일본 천황은 두 손 들고 패배를 선언을 했으며 우리나라는 자력이 아닌 외세의 힘으로 1945년 8월 15일 자유를 얻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해방되기 전부터 좌우익 이념의 싸움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는 러시아 붉은 혁명, 중국의 공산화 등 동남아시아가 사회주의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사회 곳곳에 좌익 이념을 갖고 있던 인사들이 다양한 계층에 들어가 국민들은 신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우리 조부모, 부모세대들의 인내, 근면과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경제 대국으로 발전하였다.   6. 사회적인 전반과 후대에게도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흐르게 하라.대한민국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위기와 관련해서 역사적인 각종 사건들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6.25한국전쟁으로 전국토가 황폐화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였다. 70여년 만에 경제부국을 이루었다.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발전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찾아보기 힘들지만 우리는 해내었다.이렇게 저력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하여 더욱 나라를 굳건히 세우고 민의를 대변하여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 지기를 희망한다. 모든 국민들이 건설하는 대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나라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우리 사회 전반과 후대에게도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흐르게 하자. 바라기는 금번 총선을 통하여 바른 정치가 형성되고 헌법 가치에 맞는 국가관을 지니고 지역생활에서 겸손히 낮은 자세로 성숙하고 분별력 넘치는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Read More
  • 18
    [한국교계뉴스] 샬롬나비, 제54회 월례포럼 미주교회신보2024.03.31
    주제발표는 기독교학술원장이며 숭실대 명예교수 김영한 샬롬나비 상임대표가 맡았다. (사진) 동산교회 포럼 “대한민국과 한국교회 - 기독교 민족주의"월례포럼은 동산교회 주일 저녁 예배에 동산교회 성도들이 함께 하였으며 강연에 앞서 한국교회와 복음화를 위하여(곽혜원 박사 경기대 초빙교수), 한국사회와 안정을 위하여(배선영 목사, 송파가나교회 담임목사), 세계선교와 난민을 위하여(권요한 목사, 서울대 학원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김영한 대표는 주제발표에서 유대교 민족주의는 유대인의 남은 자들의 애국정신에서 나온 것이고, 모세와 에스더, 느헤미아, 다니엘 세 청년 등이 대표였으며 기독교 민족주의는 사도 바울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고 하였다.성경적 신앙은 각 나라에 있어서 그 민족에게 공동체를 세우는 방향으로 응집력이 되었는데 우리 대한민국도 대한제국이 망한 후에 기독교 애국지사들(이승만, 안창호, 전덕기, 이승훈, 이동녕, 김구 등)이 3.1정신의 계승으로 상해에서 세운 임시정부의 헌장에 기독교 나라, 자유민주공화국 정신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번 월례포럼은 대한민국이 이승만의 기독교적 정신으로 건국되었고, 3.1운동을 주도한 애국자들이 역시 이승훈, 신석구, 길선주, 김마리아 등 기독교 지도자들이며, 임시정부의 헌장에도 기독교 정신 잘 명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한민국 탄생에 미친 기독교의 영향력을 상기하며 오늘날 한국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며서 다시한번 기독교인들의 자부심과 책임을 깨닫게 하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었다.   월례포럼에 앞서 개최된 3월 이사회에서는 제55회 월례포럼, 상반기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 제28회 학술대회, 상반기 워크샵 개최 등 2024년 상반기 사업에 대하여 논의하였다.강사 샬롬나비(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Read More
  • 17
    [한국교계뉴스] 샬롬나비 부활절 논평 "생명 포기를 넘어 생명 희망으로" 미주교회신보2024.03.28
    사진(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2024년 부활절 논평>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은 2024년 부활절 다음과 같이 논평을 발표했다. 2024년 3월 마지막 주일은 인류와 모든 생명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하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부활절이다. 2000번 가까운 부활절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인류는 여전히 폭력과 전쟁을 범하고 있으며,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는 죽음의 공포가 상존하고 있다.대한민국 역시 아직도 북한과 휴전 상태에 있을 뿐만 아니라,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겪음으로써 삶을 포기하는 죽음의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즉,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죽음의 쏘는 것”(고전 15:55)에 두려워 떨고 있다.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가장 절망적일 때에, 다시 말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불가능해져 버렸던 절망의 시간에 시작되었다. 예수님 옆에 매달렸던 행악자 중 한 명은 죽음의 극단적 절망 앞에서 예수님을 구주(救主)로 고백했을 때 낙원을 약속받았다(눅 23장). 그 어떤 희망도 남지 않은 무덤에 죽음을 각오하고 찾아갔던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증인이 되었다(마 28장).하나님의 창조의 빛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시작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희망이 사라졌던 예수님의 죽음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부활 희망을 통해 이제 샬롬나비는 가장 절망스러운 우리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거기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희망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자 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는 이 사실에 우리 삶과 실존이 기초하고 있음을 천명한다.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 세속인들이나,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지만 자유주의 신앙에 가까운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만을 기준으로 삼아, 자연의 질서가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확실하며, 그렇기에 죽은 자들이 결코 육체적으로 다시 살아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절대화하는 인간중심주의적 한계를 지닌다.분명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빈무덤이 사실이었음을 밝힌다. 당시 사람들은 올바른 사실은 아니었을지라도 최소한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사실을 두루 알고 있었다(마 28:11~15). 나아가 복음서 기자들은 자신들의 정직함 때문에 이 빈무덤의 첫 번째 증인들이 여성임을 숨기지 않았다. 만약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거짓이라고 강하게 입증하고 싶었다면, 오히려 약점이 많은 당시의 빈무덤 소문과 여성의 첫 번째 부활증언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들은 빈무덤 소문과 당시 증인으로 인정받기 힘들었던 여성들의 증언을 묵묵히 기술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당시의 그들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너무 잘 알려져 있기에 결코 숨기거나 왜곡할 수 없었던 사실들이었기 때문이다.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빈무덤과 최소한 제자들이 그것을 직접 목도했다는 분명한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았고, 그와 관련된 사건을 제자들이 목도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이다. 이것은 부활사건이 단순한 믿음의 차원을 넘어 사실의 차원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과 삶의 허무를 극복하는 사건이다.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몸의 살아남을 넘어 죽음 자체가 더 이상 우리를 허무로 돌릴 수 없음을 드러내는 사건이며 삶을 위협하는 허무 극복의 사건이다. 예수님이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 8:51). 말씀하신 것처럼, 십자가를 따르는 우리를 죽음은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한다.복음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 오심 자체가 세상의 종말이며(막 1:15), 그분의 오심을 통해 자연의 질서는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이성과 경험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를 의미한다.타락한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첫 번째 질서는 생명이 있는 자들은 반드시 모두 죽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창 3:19).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시작된 종말은 바로 이러한 첫 번째 질서를 깨어 부수고 새로운 희망을 선포하였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 죽지 않으며, 또한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 나라를 가장 먼저 선취한 사건이다. 이제 죽음이 우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종말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아직-아님’이지만, 이 죽음의 끝남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이미’ 우리의 삶 안에 들어와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통해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으며,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은 자들은 다시 깨어나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모든 인류는 삶의 허무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죽음, 고통, 노화, 나약함 등 인류의 부정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희망을 통해 극복되며, 더 이상 이것들은 우리에게 허무함을 줄 수 없다. 우리의 모든 부정성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멸절(滅絶)되기 시작했으며,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 어떤 허무함도 없는 삶을 영위할 것을 희망한다. 3. 자살률 1위 대한민국은 예수님의 부활 신앙을 통해 생명의 포기를 넘어 생명의 희망으로 나아가야 한다.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안락사 등 또 다른 형태의 자살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해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음의 극복이고 허무에 대한 승리라면, 이제 우리는 삶의 고통과 무의미함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 죄 됨을 우리 사회에 일깨워 주어야 한다.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사상들은 자신의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명은 결코 자기 자신의 능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는 기독교의 고백은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나아가 6일째에, 즉 가장 나중 지음받은 창조의 정점(頂點)으로 고백한다. 즉, 6일째에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한 수동적 존재자이면서, 동시에 앞서 5일간 창조된 다른 피조물들 이후에야, 그것들의 바탕 위에서야 창조되어 생존할 수 있었던 가장 수동적 존재자이다. 이처럼 우리 마음대로 생명을 얻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생명의 포기 역시 우리 마음대로 선택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자살이나 안락사가 살인과 다름없는 범죄인 이유는 우리 생명의 수동성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와 더불어 모든 생명을 다시 살리시겠다고 약속하셨다(겔 37장). 모든 죽은 자들 부활의 선취(先取)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살의 저주를 넘어 생명의 희망에 이를 수 있다. 우리의 생명이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에 죽음은 우리를 지배할 수 없으며, 우리는 모든 죽음의 공포를 넘어 영생을 희망‘할 수 있으며’, 또한 희망‘해야 한다.’ 4. 인간 욕망에 따른 과학 기술의 발달은 더 많은 생명의 죽음과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우리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환경의 위기와 생태계의 파괴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부활의 희망으로 이끌고, 이것은 단연코 우리의 삶과 생명 전체의 갱신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들이 부활을 신앙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모든 생각의 기준을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타락한 인류의 인간중심주의는 부활을 믿지 못하며, 그 어떤 부활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중심주의는 자신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른 생명을 함부로 죽음으로 내몰고 거기로부터 자신의 안정을 획득하려 한다.예를 들어, 과학의 발달은 인류의 삶을 지켜주는 소중한 항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현대과학의 중심에는 오직 인간의 욕망과 욕구 실현만이 위치했으며, 그렇기에 과학의 발달은 더욱 더 많은 다른 생명의 죽음과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희생되는 생명은 실험 대상이 되는 실험실의 귀중한 생명들(동식물 등)이다. 5. 예수님의 부활 생명은 하나님 중심의 생명 사상이 인류의 유일한 소망인 것을 선언해준다.죽음과 폭력이 난무하는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희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희망”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희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희망이란 우리의 욕망과 욕정을 통해 나타나는 단순한 기대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나 다른 생명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이 중심과 기준이 되는 희망이며, 오직 그분만이 이루어내실 수 있음에 대한 신뢰이다. 그리고 그러할 때에만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과 삶의 허무를 극복하게 하고, 생명의 포기를 넘어 생명의 희망으로 진입하게 하며, 부활의 사건이 인간을 넘어 전체 생명으로까지 확장되게 할 것이다. 6. 예수님의 부활 신앙을 통해서 생명의 희망은 온 지구상의 생명체에 확장되어야 한다.과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의 중심과 기준에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계셔주신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과 더불어 그분이 모든 피조물이 중심이 되어준다면, 환경과 생태계 절멸의 위기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중심과 기준에 하나님이 위치하신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신앙의 항목을 넘어 우리가 희망하고 경험할 수 있는 사실로 인정될 수 있다.인간의 타락 때문에, 인간의 자기중심성 때문에 “피조물은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롬 8:22).”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부활은 이제 인류의 구원과 부활을 넘어 지구촌 전체 생명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실현하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라 나를 내어주고 다른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과 생명의 희망은 이제 우리에게 지구촌의 전체 생명을 보존하는 삶을 요구한다. 2024년 3월 29일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일동 
    Read More
  • 16
    [한국교계뉴스] 2024년 고난주간 묵상 기도 미주교회신보2024.03.26
    샬롬나비(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2024년 고난주간 묵상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께선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발을 닦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주이고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스승이 스승의 존엄함을 지녔음에도 제자의 발을 씻어주어야 큰 가르침이 일어나고 임금이 임금의 권위를 지녔음에도 백성을 섬길 때에 천하에 평화가 오고 아버지가 아버지의 위엄을 지녔음에도 자식과 아내를 섬길 때에 가정의 행복이 오고 심판의 주가 용서하고자 스스로 죽음을 택할 때에 구원이 일어납니다. 주님의 겸허와 희생을 본받게 하소서!샬롬나비는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십자가 주님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드립니다.올해 고난주간에는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말씀을 묵상하며 통회의 기도를 드립니다.“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원수는 물론이요 다른 성도들에게도 용서보다는 분노, 미움, 보복을 행한 죄를 통회합니다.주님의 십자가 위에서 첫 번째 기도가 바로 이방인을 위한 기도였습니다:십자가형을 준비하고 실행하고 있는 로마군인들이었습니다. 용병들이라면 또 다른 이민족들입니다. 이들의 용서를 구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감격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남들이 내게 손해를 끼치고 해코지하면 가해자들을 향하여 분노하고, 보복을 예고하고, 저주하고, 악담을 쏟아내길 잘하는 우리임을 자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어떻게 주님의 마음과 기도를 본받을 수 있을지 가르쳐주시옵소서! 원수에게는 물론이요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성도들에게도 용서하기 보다는 분노, 미움, 보복을 서슴지 않았던 우리입니다. 그러고도 버젓이 주님 앞에 나와 경건한 모양으로 예배를 드린 죄인입니다. 손해와 고통을 가한 이웃의 불행과 망하기를 원했던 부끄러운 우리를 변화시켜주시옵소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죽어 마땅한 이웃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편견과 교만을 통회합니다.십자가 형틀에서 죽어가고 있던 한편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기도했을 때 주신 주님의 사면령입니다. 특별히 유대인 동족 가운데 사형을 언도받고 죽어가는 중에 있는 흉악범에게 내려주신 구원초청입니다. 그래서 사면 복권시켜주시고 천국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형수라도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면 단번에 구원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도 수많은 귀신들린 자, 나병환자, 소경, 중풍병자, 혈루증 환자, 죽은 자를 살리시며 동족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면령을 직접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하신 그 사면령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선포할 수 있도록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죽어 마땅한 나는 은혜로 구원받아 놓고서, 죽어 마땅한 이웃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편견과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 27)부모에 효도못한 우리의 허물 통회합니다. 용서하옵소서! 십계명 제5계명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이 봉양하도록 위임하시는 기도를 듣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부모님께 효도를 잘하지 못합니다. 여분의 짜투리 비용을 제공하면서 잘했다고 생각하고 건강이 곤란한 지경에 이르면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손쉬운 효도하는 삶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여러 동생들에게 맡길 수도 있었지만 아직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효를 할 차원이 아님을 아시고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일을 내 순서, 내 몫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기피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셨습니다. 통회합니다!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상태를 경험하신 성자 예수님의 절규의 기도를 묵상하면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는지 가늠케 해줍니다. 하나님 아버지! 용서하여 주심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이 큰 고통을 겪으시며 우리의 죄짐을, 죄값을 치르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내가 목마르다”(요 19:28).못 자국에서 흘리신 피로 목마름을 호소하신 주님을 외면한 허물을 통회합니다. 성경(시69:21)을 이루게 하시려고 목마름 가운데서도 정직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활용하고 있는 무서운 불신앙을 꾸짖어 주시고 주님을 닮게 해주시옵소서! 십자가형을 받는 사람은 못 자국에서 방울방울 피가 흘러내리며 긴 시간 동안 말할 수 없는 목마름과 고통을 받습니다. 우리는 죄와 싸우지도 않고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도 않고 타협하든지 피해버리는 미꾸라지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다 이루었다”(요 19:28)고통으로 우리 죄를 사하신 대속의 공로를 찬양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아쉬움과 부족함이 많을뿐더러 생의 마지막 결산 앞에서 부족함은 마찬가집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택하신 백성들 구원의 소명을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에 보냄받은 하나님의 뜻, 소명을 다 이루는 삶을 살게 해주시옵소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영혼을 아버지께 맡기신 주님의 신앙을 본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지상에서 삶을 끝내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죽음 이전에도 하나님의 손에 맡긴 삶이 되어야 하겠지만 죽음 이후의 삶도 하나님 아버지 손에 맡겨야 함을 깨닫길 원합니다.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일동 
    Read More
  • 15
    [한국교계뉴스] ▶故 박태춘 목사님 부고◀ 미주교회신보2024.03.23
    편집국장 최 선
    Read More
  • 14
    [한국교계뉴스] 축 시 '한국교회에 핀 꽃' 시인작가 최선 박사 미주교회신보2024.03.22
     
    Read More
  • 13
    [한국교계뉴스] 이 달의 시 '한 가지 일 때문에' 시인 이정균 박사 미주교회신보2024.03.22
     
    Read More
  • 12
    [한국교계뉴스] 이천식 목사 나무 십자가 이야기 전시회 미주교회신보2024.03.21
     
    Read More
  • 온라인신문

    바로보기
  • 문의/제보

    바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