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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출생률’과 ‘난임’ 미주교회신보2023.03.02
    필자는 베이비 부머라고 하는 세대의 중앙에 태어났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면서 늘 들었던 말이 ‘산아제한(産兒制限)’이라는 용어였다. 지나치게 많은 아이를 낳아서 나라 살림이 어려우니 조금만 낳자는 말이다. 그래서 나온 표어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고, 어느 시절부터인가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잖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그래서 둘 이상 낳으면 야만인 취급을 받았고, 셋째 아이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그 당시 이러한 표어를 만들고 그렇게 교육하도록 했던 사람들은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었겠지만, 우리나라의 미래를 망가뜨린 것만은 확실하다. 지하에서 그들은 뭐라고 변명할까 궁금하다. 예비군 훈련 갔다가 정관 수술하면 면제해 주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둘만 낳기를 권장하다가 하나만 낳도록 유도했는데, 결과는 지금처럼 암담하기만 하다. 며칠 전에 나온 뉴스는 아주 화가 많이 날 정도로 답답했다. 뉴스의 제목은 ‘280조를 쏟아 부었는데…작년 출산율 역대 최저 0.78명’이다. OECD회원국 중 꼴찌이고,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친다는 것이 뉴스의 골자였다. 뉴스를 듣고 무지하게 화가 난다. 16년 간 약 280조를 저출산 대응 예산으로 쏟아부었다는 말과, 출생아 수는 20년 전의 반 토막 수준인 25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는 말이 뭔가 석연치 않다. 280조를 아이 낳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주고, 낳은 아이는 나라에서 키워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쓸데없는 곳에 돈만 쏟아붓고 말았다는 말이다. ‘난임’이라는 말의 의미는 ‘1년 간(여성의 나이 만 35세 이상은 6개월)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가졌는데도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과거에는 불임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불임(不姙)과는 차이가 있다. 불임은 글자 그대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불가능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난임이란 임신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임신할 수는 있지만 쉽지 않은 상태다. 듣자니 요즘 정부에서는 난임 시술비를 2회까지 지원한다고 한다. 도대체 2회까지만 지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묻고 싶다. 아이를 낳기를 원하면 끝까지 지원해 주어야지 무슨 근거로 2회만 지원하고 마는가? 280조 원이면 난임 부부에게 무한정 지원하고 남는다. 뿐만 아니라 아이 낳은 가정에 1억씩 지원해도 된다. 280조를 어디에 썼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다. 연구에 의하면 난임가정은 70~80%가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아이를 낳으면 지방정부에서 키워주어야 한다. 아이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미래에 가장 먼저 인구 소멸할 나라 중 첫 번째가 우리나라라고 한다. 그러니 불임이라고 판단한 경우가 아니라면 끝까지 지원해 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연구비 아무리 지원해도 젊은 부부가 학원비 부담되고 우윳값 부담스러워하면 이미 아이 낳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지방정부나 중앙에서 지원해 주면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난 해 필자가 예체능 학원비를 지원해 주자는 주장을 했다가 선심성이라고 야단맞은 적이 있다. 나랏돈이라고 제 마음대로 쓰면 되느냐고 핀잔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학원비가 얼마나 문제가 되면 국제적으로 뉴스거리가 되었겠는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를 낳기를 거부하는 부부도 있고, 낳기를 원하지만 생리적인 문제로 어려운 가정도 있다. 이러한 것들 중에는 경제적인 원인도 있을 수 있다. 아마도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예체능의 경우는 학교에서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도 아니니 포퓰리즘이라 논쟁하기 이전에 아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280조 원을 차라리 이런 곳에 쓰라는 말이다. 다문화가정의 각종 문제는 이민청을 만들어서 해결해야 한다. 이미 단군의 자손이니 순수혈통주의니 하는 주장하기에는 늦었다. 결혼이주여성이 200만 명을 넘고 있는데, 무슨 순수혈통을 논할 수 있는가? 임신한 사람은 범죄로 인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아이를 낳으면 정부가 키워주면 출생률은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다른 것은 다 제외하고 280조를 순수하게 아이 낳은 가정, 혹은 낳기를 원하는 가정에만 제공하면 출생률은 당장 높아질 것이다. 오늘은 필자가 흥분해서 난임에 관한 이야기만 했는데, 마무리로 한국어 공부 하나만 해야겠다. 흔히 소파(搔爬) 수술(手術)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말로 하면 ‘긁어냄술’이라고 한다. 소파(搔爬)가 ‘긁어내다’라는 뜻이다. 잘못된 임신의 경우 태아를 긁어내는 수술을 이렇게 말하는데, 소파의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걸로 마무리한다.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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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핼로윈 유감 최태호교수2022.11.06
    ‘할로윈’과 ‘핼러윈’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교수 최태호   우선 이 글을 통해 이태원에서 숨진 많은 젊은 영혼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많은 외국 문화가 몰려 왔지만 ‘핼러윈 데이’만큼 이상하게 변질되어 확대된 것은 없을 것이다.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한창 꿈에 부풀어 있어야 할 나이에 스트레스 풀려고 갔던 길이 영원의 길이 되었으니 그 부모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짐작이 간다. 필자도 강단에서 40년을 지켜온 교수로서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모두가 필자의 탓으로 돌려도 좋다. 잘못 가르친 교수의 탓이다.) 우선 외래어는 우리말에 적당한 단어가 없는 관계로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국립국어원에서 각각의 표기법에 관해 규정해 놓은 것이 있다. 그 규정에 의하면 ‘할로윈’이 아니라 ‘핼러윈’이라고 써야 한다. 많은 언론사에서 무분별하게 ‘할로윈 데이’라고 표기하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미국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재미있는 귀신의 복장을 하고 집집이 다니면서 사탕을 얻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수입되면서 각종 마귀의 형상과 악마의 모습을 하고, 게임 캐릭터를 흉내 내면서 그날을 즐긴다. 그렇게 해서 하루만이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라 이해하지만 사람이 죽는 경우에 이르게 되었다면 이 문제는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무튼 본 칼럼은 표준어 규정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필자의 주장은 여기서 마무리 하고 핼러윈의 유래와 올바른 표준어 쓰기에 대해 설명하고 마무리 하고자 한다.   오늘날에는 할로윈(Halloween) 축제라고 하면 무시무시한 복장으로 변장을 한 채로 참가하는 가장무도회와 입으로 사과물기를 하거나, 집집마다 사탕을 구하러 다니는 아이들로 북적대는 밤을 떠올린다. 하지만 할로윈 축제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기 전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축제가 벌어졌으며, 그 역사 역시 2,000년을 훨씬 넘는다. ‘환락과 유희의 밤’으로 변화된 오늘날의 할로윈은 아일랜드 켈트족의 삼하인이라 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삼하인은 죽음의 제왕인 샤먼을 섬기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성인(聖人)의 날 하루 전날인 10월의 마지막 밤을 여기저기에서 온갖 요정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날이라고 생각했으며, 인간이 ‘영(靈)의 세계’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중략)-모든 의식이 끝나고 나면 집집마다 화톳불에서 불이 붙은 장작을 하나씩 가져다가 집에 있는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고대 로마인들이 켈트족을 정복한 이후에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금지했다. 할로윈 축제는 그 모습을 달리해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이상 <다음 백과>에서 요약하여 재인용)   위의 문장을 보더라도 ‘할로윈’이라는 표기를 고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유래를 설명하는 것이니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겠지만 대중들이 보는 글이나 매체에서는 표준어를 사용해야 함은 기본이다. 우리가 틀리기 쉬운 외래어 발음들이 상당히 많다. 외국어와 외래어는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말의 규정에 따르는 것이 좋다. 우선 외래어 표기 규정을 정리해 보자.   제1항 :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자모만으로 적는다. 제2항 :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 제3항 :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적는다. 제4항 :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직으로 한다. 제5항 :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   라고 되어 있다. 외래어는 우리말이 된 외국어를 말한다. 스마트폰, 프린터, 키보드 등이 좋은 예다. 우리가 흔히 잘못 쓰고 있는 것의 예를 보자.(화살표 오른쪽이 맞는 표기법임) “오오사카=>오사카, 쥬스=>주스, 텔레비젼=>텔레비전, 까페=>카페, 째즈=>재즈, 가디건=>카디건, 렌트카=>렌터카, 밧데리=>배터리, 앵콜=>앙코르, 플랑카드=>플래카드, 화이팅=>파이팅, 호일=>포일” 등과 같이 셀 수 없을 정도 많다.   이왕 규정을 정해서 만든 것이니 우리 모두 규정대로 읽고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언어를 바르게 사용하는 민족이 선진국민이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 또한 큰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세계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인 만큼 자랑스럽게 규정을 잘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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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ㅎ종성 체언 이야기 최태호교수2022.11.02
    [최태호] [오전 11:05] ☆오늘은 쉬어가는 날!옛말에서 ‘ㅎ’곡용어이었던 ‘머리(頭), 살(肌), 수(雄), 암(雌), 안(內)’ 등에 다른 단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합성어 중에서, [ㅎ]음이 첨가되어 발음되는 단어는 소리나는 대로(뒤 단어의 첫소리를 거센소리(격음)로) 적습니다.예 : 머리카락(머리ㅎ가락), 살코기(살ㅎ고기),수캐(수ㅎ개),암컷(암ㅎ것),안팎(안ㅎ밖)‘암-, 수-’가 결합하는 단어의 경우는 표준어 규정(7항 다만)에서  수캉아지, 수캐, 수컷, 수키와, 수탉, 수탕나귀, 수톨쩌귀, 수퇘지, 수평아리, 암캉아지, 암캐, 암컷, 암키와, 암탉, 암탕나귀, 암톨쩌귀, 암퇘지, 암평아리를 예로 들었습니다. 보통 암평아리, 수평아리, 암탕나귀, 수탕나귀 등을 어색하게 생각합니다. 문제 : 닭의 새끼는 병아리, 소의 새끼는 송아지, 꿩의 새끼는? 답 : 꺼병이(흔히 꺼벙이라고 하지요.)♡최태호의 한국어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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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칼럼] [구봉주 칼럼] 진짜여야 한다 미주교회신보2022.09.20
    구봉주 목사(감사한인교회)연예인 혹은 유명인들 가운데,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특별한 재능과 영향력 때문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은 단순히 그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큰 기대감을 갖습니다. 그들이 가진 영향력이 선한 영향력 아니, 영적인 영향력이 될 것을 믿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신앙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알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아시다시피,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 밝힌 연예인들 가운데 사건 사고를 일으켜 같은 크리스천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사건이 많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떤 연예인은 음주 운전으로 큰 사고를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유명인은 일반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비리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유명인 혹은 연예인이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크리스천들도, 불안해하거나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크리스천으로 모범을 보이지 못한 그들의 잘못일까요? 제대로 그 사람의 신앙을 파악하지도 않았으면서 그가 크리스천 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랑스러워하고 더 주목하고, 선전하기에 바빴던 우리들의 잘못 일까요? 결국, 본질은 크리스천이 다 똑같은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진짜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범이 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유명한 축구 선수 중에 브라질 출신의 네이마르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한 해 연봉이 한국 돈으로 3000억을 받는 선수입니다. 연봉을 이야기해서 죄송하지만 그만큼 유명한 선수라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설명 드린 것입니다. 2016년 월드컵에서 상대 선수의 강한 공격에 의해 큰 부상을 당한 뒤 선수생활을 포기할 정도의 위기를 겪었으나, 기적적으로 재활을 거쳐 선수생활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선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진짜 크리스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원래 다른 남미 사람들이 그렇듯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에서 은혜 체험을 하고 개신교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가 공석에서 말하기를 개신교에는 진정한 말씀이 있고 예수님이 있다. 나는 그 예수님을 만났고 개신교가 진리임을 확신하고 있다. 여러분도 나와 같은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배를 드리고 교회도 잘 섬기고 하나님께 드리는 삶도 모범적으로 삽니다. 사회에 어려운 자들을 돕는 일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원래, 남미 출신 축구 선수들은 선수생활이 짧다고 합니다. 그들이 워낙 술과 마약으로 가득한 파티문화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네이마르 선수는 예수님을 만난 뒤 그런 생활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축구 선수로서 장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신을 드러내기에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지 않는 크리스천 축구선수로도 유명합니다. 간혹 그가 100% JESUS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헤드밴드를 하고 경기에 참가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못 말리는 크리스천, 진짜 크리스천입니다.크리스천이 진짜 크리스천이냐 아니냐는 중요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구원의 문제와 직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거나, 혹은 영광을 가리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는 진짜여야 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만 합니다. 말과 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법과 질서를 지키는 일까지도 그래야 합니다. 진짜로 말씀드리는데, 진짜여야 합니다.  (출처 기독일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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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진유철 칼럼] 사랑에 빚진 자임을 알라 미주교회신보2022.09.20
    나성순복음교회 진유철 목사지난 달 워싱턴 DC를 방문했을 때 알링턴 국립묘지에 새롭게 건립된 6.25 전쟁 전사자 추모의 벽을 가보았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피 흘려 죽은 미군 전사자의 이름 4만3천808명이 군별, 계급별, 알파벳순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낼 젊은이들이 당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Korea라는 땅에 와서 공산주의 침략자들과 목숨을 바쳐 싸워주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고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고귀한 희생에 새삼 가슴이 뭉클하고 엄숙해졌습니다. 전투 병력을 지원한 미국을 위시한 총16개국의 젊은이들은 최후의 낙동강방어선을 남긴 풍전등화 같은 위기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와서 피를 흘려 죽음으로 싸워주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대한민국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증거 되었고, 자유민주주의의 땅에서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사랑에 빚진 자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추모공원에 새겨져 있는 글,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더욱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오늘 주일 오후 5시30분에는 공산주의 소련이 침략 전쟁을 일으켜 바로 지금 고통 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한.우(한국과 우크라이나)연합 자선음악회를 저희 교회당에서 갖습니다. 온 세계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민주주의와 독재, 자유와 압제, 다수의 자유와 삶 위에 군림하려는 탐욕을 가진 소수와의 전쟁, 민주주의 원칙을 위한 전쟁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복잡한 이념과 정치적 논리를 떠나서라도,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집과 삶의 터전을 잃고 눈물 가운데 난민이 되어 회복의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며 고통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이 때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고, 그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사랑에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은 나누면 작아집니다. 밥도 나누면 작아지고 커피도 나누면 줄어듭니다. 슬픔도 나누면 반이 됩니다. 하지만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집니다. 세상에 아름다움을 남기며 크게 살았던 사람들은 다 사랑을 나누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열악한 환경에서 의술로 사랑을 나누며 살았던 슈바이쳐 박사가 그랬고, 인도의 빈민가에서 봉사활동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테레사 수녀가 그랬고, 구원의 복음으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많은 선교사들이 그랬습니다. 이렇게 크고 유명한 사랑은 아니더라도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롬12:15)는 말씀을 우리의 삶에서 실천할 때 우리 모두가 커지는 사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작은 희생을 통해 우리 안에 커지고 넘쳐흐르는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증거 하는 은혜와 복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출처 기독일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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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한국 장로정치 한계로서 J. A. Hodge 미주교회신보2022.09.20
    누군가 자신을 안다는 것은 칼빈의 말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하나님에게서 배운 우리란 지독한 한계에 갇힌 ‘결핍 덩어리’다. 이를 알지 못하고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 대한 의식(意識)은 처참한 자기가 버려지면서 생기는 기적이다. 알게 된 한계의 틈을 부지런히 찾아내어 근신하며 성실하게 매워가지 않으면 도무지 생명이 될 수 없는 존재다. 우리에게는 ‘멈춤’이란 것이 없다(살전 5:15-18). 자람과 퇴보, 차든지 덥든지만 있을 뿐이다. 양쪽 다 걸친 것은 중간이 아니라 퇴보에 속한다(창 4:7). 선 줄로 안 즉시 넘어질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전 10:12). 너무도 선한 마음을 품었음에도 그것이 주님의 뜻과 결정에 있는지를 따져보지 않으면 주께서 사탄이란 칭호주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음도 기억해야 한다. 자기(인간 혹은 역사적) 방식대로 일을 돌아보는 그 치명적인 결함 말이다(마 16:23).그러므로 우리의 한계를 말하는 것에 불쾌해하지 말자. 그리스도께서 교회, 특히 정치적으로 장로회를 모으시는 목적도 교회에 묻어 있는 결핍과 치명적 한계의 종자(種子)인 ‘죄’를 찾아 제거하시는 것에 있지 않은가. 칭찬보다 잘못에 대한 권징이 목적인 치리회다. 하고 싶은 대로, 좋아 보이는 대로 하도록 두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 자신이 다른 자에게 준 적이 없으므로 자신의 역사로만 취하시는 그의 사역의 시작, 말미암음, 결과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충직해야 함을 짚고 가자.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교회법의 정치·권징 부문은 웨스트민스터 총회 문서들보다 J. Aspinwall Hodge의 ‘장로교회 법규란 무엇인가(What is presbyterian law/한역서: 교회정치문답조례, 1968)’에 근거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각 장과 조의 순서, 제목, 내용에 있어 거의 그대로가 오늘날의 보수적인 예장 교단들의 교회법에 반영되어 있다. 한국 장로교회 헌법이 제정될 당시(1907년 기준) 그 원형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정치모범, 예배모범 등에 근간하여 채택하려 했지만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고(12조목에 그침), 인도 장로교회의 24신조(1890)를 요약하는 수준에서 멈췄으며(12신조), 이후로 많은 수정과 채용을 반복하다가 곽악련(Charles Allen Clark) 씨가 최초 번역(예수교 장로회 정치문답조례, 1917)한 Hodge의 이 책을 초기 한국교회에서 채용(1918/제7회 총회)한 후 역시 수정·개정이 되었고, Hodge의 진본이 사라진 채 1968년(제53회 총회)에 이르러 재번역(박병진) 출판한 것이 현대 ‘장로교회 정치조례’의 초석이 된 형태다. 그러나 앞서 약술한 대로, 한국장로교회 정치조례의 표준처럼 되어버린 이 역서(譯書)는, 오늘날과 같이 교회직원의 칭호를 직무나 직임적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부른 것이나, 치리회에 회장의 개념을 도입(moderator-의장을 회장으로 번역)한 것 외에 법리적 용어와 형식을 많이 사용함으로 인해 장로회 본래 신앙정신에서 상당히 벗어나게 하는 배후가 되고 있어, 지금은 이것을 거절하지 않는 한, 그 이전을 돌아보거나 신적 기원을 갖는 성경적 장로회 정치를 주장하고 논하는 데로 들어가기에 심히 큰 어려움이 있는 실정이다. Hodge의 책은 미국에서 1882년에 작성되었는데, 역자(박병진) 자신이 밝히고 있듯 1968년 한국장로교회에 채용된 역본은 당시 우리 형편에 맞게 손을 대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하겠다. 시기적으로 우리가 받은 미국장로교회의 유산들은 다양하게 일으켜진 그들의 국가적 상황들과 맞물려 교회의(교파 간) 분리와 연합, 그에 따른 선교정책, 교회규범 재 수립 등에 의해 이미 오염(첨삭과 수정)이 가해진 상태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우리 형편까지 더해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유럽 개혁교회가 장로정치에 다소 무관심한 반면, 미국 장로교회는 너무 법리적이라는 특징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법리란 세속법적 이치의 도용인데, 우리는 이 후자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다. 교회의 법리는 교회법에 수록된 웨스트민스터 총회 문서들의 내용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벗어나 세칙과 규칙을 따로 두는 것 자체가 정치의 세속화임을 인지해야 한다. 미국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성경이 가르치는 궁극적인 신학과 정치에 이르지 못하는 어떤 장벽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푯대가 아닌 중간의 이정표 같은 것을 붙잡고 푯대를 대신하려는 게으름을 갖게 되었다. 거기서 머물며 더 들어가기 싫어한다. 난해하며 고난까지 보장되어 있어 전진을 회피한다. 이 폐단은 장로회 정치를 배태(胚胎)한 신학에서 선행되어 교회 세속화의 두드러진 현상으로 남아있다.   이런 여건에서 시작된 우리의 실상을 보면서, 자존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바른 교리 전도(공적 설교)를 위해 교회의 정치질서를 어떻게 세워가야 하는지를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을 통해서 다시 배우기를 바란다. 한계로 제시된 앞의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라, 신조와 분리시킨 지금의 정치부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큰 결심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바른 정치는 신조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는 신조(신학)에 종속된다. (출처 한국교회신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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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그림이 있는 성서 에세이5/가버나움의 빈들 미주교회신보2022.09.20
      《씨앗이 담긴 컵 2008. 황학만 作》   귀에 익은 ‘가버나움’-. 오천 명이 앉아 식사를 하고도 남을 만큼 넓은 언덕진 그곳은 갈릴리호수 북쪽에 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山上垂訓)을 설파하셨던 자리에는 팔복예배당이 자리하고 있고,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나부끼는 루비 빛 꽃들은 그곳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천국복음을 상기케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예수께서는 가난했던 그들에게 천국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배부르지 못하는 이들의 것이라고 외치셨다. 예루살렘터미널에서 갈릴리 행 버스를 타면 호수 남서쪽 ‘디베랴’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여객선을 타면 호수를 빗겨 질러 ‘가버나움’으로 가게 된다. 파도를 헤치고 가는 배를 뒤따르는 갈매기 떼 울음소리가 마치 사도들이 떠드는 소리인 듯 들린다. 삼킬 것 같은 파도에 놀라서 잠든 스승을 깨우거나, 물 위로 걸어오시는 스승에 놀라는 제자들의 소란, 그리고 그 호수를 ‘바다’라 부르며 고기 잡던 제자들의 떠드는 소리다. 디베랴마을에서는 ‘디베랴 바다’라고 부르고, 긴네렛 마을에서는 ‘긴네렛’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갈릴리호수는 그들에게 정녕 바다였다. 그곳은 장차 제자들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한 수련장이었다는 듯이 때로는 폭우가 몰아치고 성난 파도가 요동하기도 한다. 호수의 동쪽에 ‘거라사’, 북동쪽에 ‘벳새다’, 북쪽에 ‘가버나움’, 그 윗마을 ‘고라신’, 서쪽에 ‘디베랴’, ‘막달라’ 거기서 몇 개의 언덕 너머 ‘가나’와, 그 너머 아래 외딴마을이 ‘나사렛’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외면하시고, 헐벗고 가난한 갈릴리사람들에게 천국설파와 표적(表迹)을 보여 천국의 실상을 알리셨다. 그러나 빚어진 결과는 비통한 절규였다. “화 있으리라 ‘고라신’아-! 화 있으리라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까지 낮아지리라. 심판 날에 ‘소돔’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그럼에도 그들 곁을 떠나지 않으신 까닭은, 그들 넘어오고 오는 세대에도 그 천국을 알리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의 귓전에도 그때 그 이야기가 들리는 것이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져서 싹이 났으나 해가 돋은 후에 뿌리가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졌으나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 결실하게 되었지.”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지구 뒤편에서도 그곳을 성지라 부르며 순례 길을 떠나더니, 시대가 급변했다. 그새 상대적 빈곤이라는 허상이 밀고 들어와 굶주린 이들을 내몬 것이다. 천국이 저들의 소유라면, 정작 가난한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허공에 산화한 그 말씀은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 밭을 찾는데, 상대적 빈곤을 가난이라 하는 세대에 산상수훈은 도대체 어디에 떨어졌을까?어쩌면 우리가 부유한 나머지 부족한 것이 없다는 ‘라오디아교회’였는지도 몰라 귀를 기울이게 된다. “네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17, 20) 또다시 옥토를 찾는 씨앗, 오늘도 여전히 그 가버나움 허허로운 빈들이다. (출처 한국교회신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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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간첩 목사 소강석, 가짜 목사 타도’라니? 미주교회신보2022.09.03
    남가주교계연합회(상임대표회장 신승훈 목사)가 지난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하여, 새에덴교회 담임 소강석 목사를 강사로 초청, 제77주년 광복 감사 부흥집회 및 교회 회복 부흥 세미나를 주님의영광교회에서 가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실을 호도하며 집회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무리들이 소강석 목사를 간첩 목사 또는 가짜 목사라며 행사 당일 날 주님의영광교회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했다.    이들은 또한 남가주 교계에서 영적 지도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교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귀한 목회자(민종기 목사, 한기홍 목사, 진유철 목사, 신승훈 목사) 들을 좌파라는 프레임을 씌어 행사장에 갈 수 없도록 당일 오전까지 집요하게 방해를 했다.    다음은 집회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자들이 카카오톡과 주님의 영광교회 앞에서 직접 전달한 글의 일부 내용임을 밝힌다.    『문재인과 이재명과 자유대한민국에 널리 퍼진 주사파 공산주의자들과 같이 이준석, 유승민, 김무성, 권성동 등 모두는 좌파가 보낸 트로이 목마에 숨어 나온 좌파 전사들이다. 이와 같이 간첩 종북 목사들도 마찬가지 트로이 목마에 숨어있다 나오는 좌파 공비들이다. 그들은 우파와 자유민주주의를 패망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다시 오실 예수님의 대로를 막고 나서고 있는 좌파 간첩 목사들은 적그리스도와 같은 매우 위험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교회를 장악하고 성전 십자가 앞에 앉아 꽈리를 틀고 있는 사탄의 흰 백사들이다.    거기에 합세해서 주님의 영광교회와 형제교회인 은혜한인교회의 현 담임목사 한기홍 목사까지 북한 간첩 소강석 가짜 목사와 합세해서 집회를 한다는데 우리 주님이 이를 그냥 잘한다고 내버려 두라 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에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입은 성도라면 당연히 의분을 참지 못 하여야 하리라 믿는다. 이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일이며 배도이다. 이 시대는 시온 사상인가? 마귀 사상인가?    적그리스도들과 세계 정부론자들은 공산 전체주의자들을 이용해서 마침내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배교케 하기 위함 계략을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예술, 종교 기독교계가 가장 큰 타깃임을 알고, 정신 바짝 차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영적 분별력으로 날마다 깨어 불법의 사람 미혹의 영을 가진 자들을 분별하여 이기는 자들 되어 주님 재림 시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참예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윗글을 읽어 본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참으로 궁금하다. 옛말에 칼로 벤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말로 벤 상처는 평생 간다는 말이 있다. 정확한 사실을 무시한 채 간첩 목사 소강석, 가짜 목사 타도라니? 정말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소강석 목사님은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요, 한국기독교 최대 교파 중의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전 총회장이요, 한국교회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하신 목사님으로, 지난 16년 동안 6.25 참전 용사들 5천 명 이상을 섬기신 목회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당치도 않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지 그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목회자들을 한꺼번에 모독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또한 간첩 종북 목사들도 마찬가지 트로이 목마에 숨어 있다 나오는 좌파 공비라니….    소강석 목사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아니면 말고식의 간첩 목사, 가짜 목사라고 주장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주 안에서 하나 되어 대통령과 위정자들과 대한민국을 위해 힘껏 기도할 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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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성평등과 양성평등 최태호교수2022.08.09
    성평등과 양성평등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교수 최태호   오늘 다룰 주제는 조금 무겁다는 느낌이 든다. 참으로 요즘은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껄끄럽기도 하고 몰매를 맞기도 쉽다. 그러나 성평등이나 양성평등에 관한 개념은 명확하게 하고 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팔자의 의견이 다 옳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보편적인 언어학자요, 아버지의 글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필자도 초보 교사 시절에는 숙직에 관한 불만이 많았다. 태능중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한때는 숙직을 할 수 있는 남자교사가 일곱 명에 불과해서 매주 월요일마다 숙직을 한 적이 있다. 사실 그때는 오히려 숙직이 좋았다. 성남에서 태능까지 출·퇴근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숙직하면서 학교에서 자는 것이 오히려 편한 적도 있지만 1년을 그렇게 하다 보니 일직만 하는 여교사들에게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군대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의료보험료 한꺼번에 내는 것도 불만이었고, 남자라는 이유로 학생부에 근무하면서 추운 겨울날 정문지도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정문지도비로 한 달에 3000원 더 받는다고 직원회의 때 마이크 잡았던 여고사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벌떡일어나서 “그럼 내일부터 네가 정문지도해 봐.”하고 직원회의장 박차고 나온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요즘은 남자 경찰들이 역차별이야기를 하면서 양성평등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어느 사회나 차별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교사들이 학생부에 근무하는 것을 꺼리듯이 경찰들은 기동대에 근무하는 것이 싫은가 보다. 군대는 보직이라고 하더니 일반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양성평등은 필자도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당연히 인간이라면 모두 평등해야 한다. 차별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다르다. 평등해야 한다고 해서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민자나 다문화가족 등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성적 소수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성적소수자에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동성애자나 시체성애자, 동물성애자, 노인성애자, 사물성애자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아동성애자로 인해 피해를 본다면 그 부모의 심정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성적소수자의 행위이니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금지된 범법행위이니 처벌해야 할 것이지 말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양성평등이라는 말은 “ 남성과 여성의 두 성이 권리나 의무, 신분 따위에서 차별이 없고 한결같음”을 말한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사회적 차별을 말할 때는 양성평등이라는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본다. 필자의 교사 시절이나 지금 경찰들이 기동대 얘기를 하는 것은 모두 양성평등에 어긋나기 때문에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항변하는 것이다.(사실 이것은 평등의 문제를 떠나 조직의 비율의 문제로도 볼 수도 있다. 남경과 여경, 남교사와 여교사의 비율이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성평등은 “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법률적 권리나 사회적 대우를 동등하게 받는 것”을 말한다. 예문으로는   칼럼에는 성평등의 실현을 위해 남성들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고 제시되어 있었다. <고려대한국어사전>   마치 성평등 의식이 차별금지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이 두 가지의 주제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성평등 의식과 성적 소수자의 문제도 다르고 차별금지와 양성평등의 문제도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백두대간을 얘기하면서 그 속에 있는 나물은 그냥 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필자가 볼 때는 오히려 반대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백두대간을 얘기하면서 내심 작은 산맥은 두루뭉수리 넘어가자는 속셈이 드러나 보인다. 때로는 하나하나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명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굳이 성평등 운운하면서 차별금지법과 연관지어서는 안 된다. 개념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혼란이 야기된다. <논어>에 나온 대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 이것이 정명(正名)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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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의사가 좋은 직업은 아니죠! "이상기목사" 미주교회신보2022.08.06
    지난 7 월 20일은 수요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오른쪽 눈에 통증이 왔습니다. 즉시 거울 앞에 서서 눈을 살피니 오른쪽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으며 눈 위쪽으로는 다래끼가 났을 때처럼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럴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지만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오른쪽 눈에 통증이 왔습니다. 즉시 거울 앞에 서서 눈을 살피니 오른쪽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으며 눈 위쪽으로는 다래끼가 났을 때처럼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럴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지만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불편함 몸을 이끌고 교회로 향하는 길에 10여 년째 다니는 안과병원에 운전하던 차를 길가에 세우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필자가 가지고 있는 보험이 HMO이기에 먼저 주치의에게 전화해서 안과병원 방문 허락을 받으라고 해서 즉시 주치의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러한 절차가 그렇게 빠르게 이루어지는 줄 몰랐습니다. 주치의 사무실 직원이 필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나서 곧 바로 안과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불과 5 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안과병원에 그 같은 사실을 알리고 언제 의사를 만날 수 있느냐고 했더니 두 시간 후 진료실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단 예약 손님의 진료가 끝이 난 다음에 진료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11시 반까지 오라고 했지만, 진료실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45분이었습니다. 진료실에는 언제나처럼 많은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필자가 다니는 안과병원은 LA 한인 타운에서 환자를 사랑과 정성으로 잘 진료한다고 소문난 곳이기에 언제나 환자가 넘쳐났습니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이었습니다. 통증을 견디기 어려운 환자 중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힘들다고 직원에게 호소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예약 환자들의 대부분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셨습니다. 그러니 필자도 의사를 만나기까지는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두 시간 이상 기다리는 동안에 의사 선생님이 분주하게 오가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필자의 마음에 의사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쉬운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의 삶에서, 없어서는 아니 되는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같은 사랑으로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의사라고 왜 피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왜 쉬고 싶은 마음이 없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정한 시간에 기다리는 환자들의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힘들어 쉬고 싶어도 마음대로 쉴 수가 없으신 겁니다. 그 생각을 하면서 의료인들에게 존경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차례가 되어 2 시간 여 만에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의사 선생님을 뵈올 때마다 드리는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한 인사는 “의사가 힘든 직업이시네요, 얼마나 힘드세요, 쉼이 필요하시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의사가 좋은 직업은 아니죠” 그 말은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사만이 가지는 아픔과 고통이 있으시다는 말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환자들이 만족한 치료를 받고 받고 고통에서 벗어나 밝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환자들의 아픔을 도와주기 위해서 쉼 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며 실행하시는 모습에서 크게 감사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누가 될 수 있는가? 미국에서 의사가 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자의 둘째 사위가 의사가 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미국의 의료제도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의사를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되는 길은 너무 길고 어렵습니다. 그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하여 의과 대학에 입학을 허락 받았다고 다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내 모든 의과 대학에서 1학년과 2 학년이 지나는 동안 20%의 학생이 퇴교를 당합니다. 문제는 1년 다니다 퇴교를 다닐 때보다 2 년 다니다가 퇴교를 당하면 평생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 수십 만 불의 학자금을 갚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학생이 미국 내에서 다시는 어느 의과대학에도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과대학생들이 공부할 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죽기 살기 식으로 공부에 전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의 건강,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지금도 일하시는 의료인들을 크게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상기 목사(평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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