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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교계뉴스] 류당열 목사의 사모곡

작성일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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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당열 목사님의 생모 고향 방문기입니다.
생모의 생가터

류당열 목사의 어머니 고향 찾기

 

류당열 목사의 모친은 명치 삼십년(1897오전 일월 십삼일에 충남 아산군 도고면 신언리에서 출생하였다류 목사가 다섯 살 때에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집안에는 새엄마가 들어 왔다류 목사는 새엄마 밑에서 성장하였고안양대학교를 졸업한 후 전도사로 부임하여 쌀 두말을 사례비로 받을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였으나이나마도 감사하며 새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그 후 그는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류 목사는 미국에 오래 거주하면서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잊을 수 없었고드디어 미국에 거주한 지 40년 만에 한국을 찾아 모친의 생가를 찾아보기로 작정하였다.

외할아버지의 성함이 안상철(호적에 의하면 1881년 12월 15일 생)이라는 것과 모친이 도고면에서 출생하셨다는 것만 알고, 2026년 2월 26일 아침 중부대학교 명예교수인 최태호 박사와 함께 길을 떠났다조금 이른 시각이라 최 박사가 자주 말씀을 전하던 도고의 목자의 집에 들러 노춘 장로와 인사를 나누고노 장로의 권유로 조반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노춘 장로가 운영하는 목자의 집은 초교파 은퇴 목회자를 섬기는 기관이다은퇴목회자나 선교사홀사모 등이 입소하면 한 달에 30만원만 받고 삼시세끼를 주고기도실과 예배실에서 언제든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노춘 장로의 안내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별장을 구경하고근처의 온천에서 목욕도 하였다점심 식사도 목자의 집에서 수육을 비롯한 맛난 음식을 선교사 지망생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해외 선교와 한국어해외 선교의 어려움 등에 대해 전임자로서의 경험 등을 알려 주었다류 목사의 기도로 본당에서의 행사를 마무리 하고 다시 어머니의 생가를 찾아 도교면사무소로 향했다젊은 두 직원이 친절하게 맞아 주어서 과거의 주소와 현재의 바뀐 주소를 알게 되었고최 교수의 차량으로 현장 근처까지 순식간에 달려갔다도보로 250m 정도 가니 현장을 볼 수가 있었다건물은 사라지고집터에 석재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각종 조각물과 정자 등이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신언3리라고 했다그곳에서 과거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파쇄석이 깔린 마당을 지나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을 법한 몇 개의 돌을 주어 왔다어머니를 기념하고 싶어서 그 돌로 상징을 삼으려는 것이다.

신언3리 마을회관에 들러서 이장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아쉽게도 외조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러간 것이다어렵사리 외조부와 같은 항렬의 사람을 찾았으나젊은이라 외조부를 전혀 알지 못했다이장(이창재)으로부터 마을의 내력과 마을의 형상(마을의 모습이 복돼지의 형상을 닮았다)에 대한 설명을 듣고화합하는 마을의 여러 가지 일들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비록 어머니의 생가를 볼 수는 없었지만생가에서 가지고 온 돌을 통해 생모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외조부의 제적등본을 받아 오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이제 부모님의 세대는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이제 후손들이 그 자리를 지키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시절이 되었다일제강점기와 한국정쟁을 경험했던 우리들의 어버이시대는 완전히 서산으로 넘어가고이제는 우리가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전해주어야 한다.류당열 목사는 그 후 도고제일교회를 찾아서 어머니 이름으로 장학금을 기탁하여 생모의 정을 기념하였고논산훈련소에서 진중세례식목사안수식 그리고 고향교회 얘배인도 등을 무리없이 수행하고 미국으로 출국하였다.

꽃은 피어서 예쁘고 열매는 영글어서 오래 간다그리고 다시 열매가 썩어야 새로운 꽃을 피게 한다더 예쁜 꽃들을 기대하며……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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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종님의 댓글

이한종 작성일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어요 건강 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 원더풀 원더풀 원더풀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