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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계뉴스] 공지 [긴급속보] 대한민국 대통령 비상계엄령 선포 미주교회신보2024.12.03
    대한민국 대통령 비상계엄령 선포윤석열 대통령은 12월 3일 10시 27분에 비상게엄령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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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계뉴스] 공지 [최선 칼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손길 미주교회신보2024.10.21
    [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 최선 박사]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 시련의 무게가 너무 커서 실망하고 포기하려는 이들도 있으나 그 환란의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는 이웃들도 많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다. 필자의 주변에도 지역 사회를 위해 사단법인 누가 참의원과 참빛병원이 크리스천의 사랑을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며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기부를 목적으로 설립 된 (사)누가 참의원은 성경의 의사출신 누가의 인물을 본받아 사랑과 섬김을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의 사랑과 나눔 그리고 섬김의 정신을 가지고 소외되고 그늘진 곳곳을 찾아 사랑의 씨를 뿌리며 열매를 맺고 있다.무엇보다 신장질환으로 고통을 안고 있는 환우들을 위하여 가정의학전문의와 신장내과 전문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아픔과 고통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이사장과 전 직원들이 섬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손길을 내밀면서 의료선교에 매진하고 있다.아프리카 우간다의 식수 지원 사업, 해외선교 후원(몽골, 일본, 필리핀)과 재난 및 전쟁 난민 후원(튀르키예, 우크라이나)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다수의 미자립교회와 신장장애인협회 그리고 부천 온스토어 사업에 후원하고 있으며 취약계층 생계비 지원 사업, 취약 아동 장학사업, 무료 도시락 배달 사업, 기타 기부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당신의 건강을 내 가족 건강 지키듯’이란 구호에서 보듯이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사)누가는 심곡동의 취약 계층 어르신께 찾아가는 따끈한 도시락 배달과 소박한 빵 한 조각도 함께 나누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지역 취약 계층과 독거 어르신들께 도시락 배달을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는 그들은 어르신들의 식사와 몇몇 분들께 충분한 빵을 드릴 수 있어서 더 없이 행복하다고 고백한다.누가법인은 내원하는 환자들의 신체, 정서, 생활 활동 전반에 걸쳐 365일 늘 함께 케어하며 이해와 공감을 생활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취약 계층에 있는 투석 환자에겐 매월 생계비를 지원하는 등 그들의 삶의 질 제고에 힘쓰고 있다, 특히 신장장애인협회 부천지회에 매월 후원할 뿐만 아니라 일시적 후원금을 기탁하며 투석 환자들을 위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협업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사랑과 섬김의 실천에 앞장을 서고 있다.참의원이 있는 지역인 6개 경로당(해바라기, 천사, 먹적골, 먹적골공원, 진말, 진말공원, 복사골공원)을 방문하여 어르신들의 간식과 안녕을 챙기는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성경말씀을 실천하는 누가 임직원들은 선교봉사, 장애인대상 이미용 섬김, 참어울림 바자회, 의료선교, 저소득층 취약계층 섬김, 행정복지센터와 함께 연탄나눔지원, 점심도시락 나눔, 다문화가정 섬김, 결식아동 섬김 그리고 해외 몽골, 튀르키예, 필리핀 의료선교, 당진지역 김장김치 나눔, 해외혈액투석 협력을 통하여 지역사회를 넘어 해외까지 늘 함께하는 참의원, 참빛병원이 될 것을 오늘도 다짐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다.생활이 어렵다며 고통이 찾아온다고 인생을 자포자기 하지말자.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같이 아파하고 보듬어 주는 선한 이웃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나보다 더 어렵고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삶의 자리에서 작은 것부터 사랑의 실천을 한다면 우리 사회는 행복한 길로 다가서는 멋진 꽃들이 될 것이다. 좀 더 힘을 내보자. 사랑의 손길   최선 박사(Ph.D., Th.D.)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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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계뉴스] 공지 [최선 박사 칼럼] 인천상륙 작전을 기념하며 미주교회신보2024.09.14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Douglas MacAthur 1880-1964) 동상 출처-최선 박사 인천 자유공원]   연합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전후 세계 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여러 회담을 진행하였는데 한반도 문제도 이 과정에서 다루어졌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 미국은 소련의 한반도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서 38도선을 제안하였고 소련이 수용하였다.1945년 일본이 항복한 이후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두 개의 군정 지역으로 나뉘어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각각 통치하였다. 그 후 전쟁을 겪으며 분단국가로 살아온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인천상륙작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참상의 흔적이 묻어 있는 인천자유공원에 다녀왔다. 푸른 하늘과 숲이 우거진 언덕 위에 세워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Douglas MacAthur 1880-1964) 동상 앞에 서서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보면서 전쟁이 한반도에서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뼈저린 결단을 하였다.기념식은 사)한미 맥아더장군 기념사업회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미국, 캐나다, 일본, 그리고 전국 각처에서 많은 분들이 오셨다. 본 지면은 인천상륙작전 기념을 축하하면서 우리 시대에 교훈을 주는 계기로 삼아본다.6.25한국전쟁 당시 삼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이 되었고 약 한 달이 지나자 남한의 80% 이상을 북한군이 점령한 상황이었다. 금년은 대한민국의 최대 위기에서 건져냈던 인천상륙작전의 승전 74주년이 되는 해이다. 군사학적으로 5000분의 1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작전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성공적으로 완성했다.1880년 1월 26일에 미국 알칸사스주 리틀록 지역에서 태어난 맥아더 장군은 1903년 육군사관학교를 탁월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그 후 대통령 부관을 거쳐 육군참모총장 대장으로 활동하다가 1937년에 퇴역하였다.그러나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에 위기에 봉착하자 1941년에 극동 사령관으로 임명 받았다. 미국은 원자폭탄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었고 그는 일본 점령군 최고 사령관이 되어 극동지역 수장으로 UN군을 총괄하였다.우리나라는 해방과 건국, 전쟁의 휘몰아치는 격랑으로 정치적, 군사적인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자유를 표방하는 다수의 국가에서 많은 도움을 보내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까지 희생해 주었다. 그 분들의 피 값이 너무나 무겁다. 우리는 이처럼 귀한 대가로 얻은 자유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순국하신 국군장병과 해외 파병국의 헌신에 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굳건한 한미동맹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정치, 문화, 군사, 교육, 외교 등 큰 성장을 가져왔다. 1884년부터 미국선교사들의 입국으로 말미암아 한국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지금은 선교대국으로 우뚝 서 있다. 이제는 미국과 영적동맹을 강조하여 쇠퇴해 가는 영적인 물줄기를 다시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세계는 지금 문화의 도전을 받고 있다. 심지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등 반기독교적인 법을 입법화하려는 시도가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다. 위와 같은 역사적인 충격의 사건 속에서 한국교회는 대형교회와 각 교단, 선교단체 등 다양한 기관들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0월 27일에 광화문과 서울시청, 서울역을 비롯하여 여의도 국회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 성도들이 모여 예배, 찬양 페스티벌 등 기도회를 한다.하나님이 세워주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건강한 국민으로 마음껏 최고의 인생을 누리며 자유, 평화, 신앙, 교육을 바르게 후대에 가르치고 물려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행복한 가정, 거룩한 교회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나라로 세워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지금은 작은 힘이지만 한국교회 성도들이 모이면 큰 물결을 이루어 세계적으로 흐르고 있는 문제들을 막는 그리고 나아가 지구촌에 영향력을 미치는 국민들이 되기를 소망한다.[더글러스 맥아더 장군(Douglas MacAthur 1880-1964) 동상 안내문 출처-최선 박사 인천 자유공원]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건져주었던 인천상륙작전 승전 74주년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축복한다.   최선 박사(Ph.D., Th.D.)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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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계뉴스] 공지 [샬롬나비 논평] 이승만 대통령의 국빈 방미 및 한미동맹 발효 70주년 기념 미주교회신보2024.07.26
    [샬롬나비 상임대표회장 김영한 박사 사무총장 김윤태 박사 총무 최선 박사 회원 일동]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70년 전인 1954년 7월 26일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꼭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다음날인 27일 한미 간 최초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8월 13일까지 약 2주 동안 미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 양국 공동성명 발표, 뉴욕 퍼레이드, 유엔본부 방문, 시카고 방문, 트루먼 전 대통령 만남, 로스앤젤레스 및 샌프란시스코 방문, 하와이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샬롬나비는 역사적인 이 방문의 의미를 되새기고 바로 기념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오늘날 북중러의 밀착하는 냉전적 위협에 직면해서 한미동맹을 가치동맹으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1. 70년 한미동맹의 바탕에는 한미 간 뿌리 깊은 ‘신앙동맹’이 있었다.   역사 속 모든 동맹이 그러했듯이 동맹을 맺는 것은 쉬울 수 있어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국제정치사에서 방위조약의 수명이 평균 9년 반에 불과하다는 연구가 이를 잘 드러낸다. 1954년 정식 발효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지난 70년 동안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지정학과 국제정치에 놀라운 혜안을 가졌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전략적 판단과 북한 정권의 끊임없는 위협 등이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70년 전보다 그 이전의 70여 년 동안 두 나라가 공유한 기독교적 사상과 정신적 바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1884년부터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이 땅에 뿌리내린 복음과 신앙이다. 작년 4월 27일 윤석열 대통령도 미상하원 합동연설에서 ‘19세기 말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이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에 큰 영향을 미쳤고 우리나라 헌법의 기초가 되는 자유와 연대의 가치를 전해주었다’라고 말하면서 이 사실을 언급했다.   대한민국은 미국이 그러했듯이, 그 자유와 민주주의의 기초에는 다름 아닌 기독교의 정신과 가치관이 건국 이전부터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두 나라의 동맹 또한 그러한 정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맺어졌다. 한경직 목사는 건국을 앞두고 한 다음의 설교에서 나라가 세워지기 전 교회가 먼저 세워진 미국과 대한민국 두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주목했다. “나라보다 교회가 먼저 서는 것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시내산에서 먼저 교회가 서고, 그 후에 나라가 가나안 복지에 섰습니다. .... 청교도들이 북미에 가서 먼저 교회를 세우고 그 후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조선 말에 기독교를 한국에 보낸 것은 장차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준비하려는 하나님의 경륜이 분명히 있습니다. .... 미국이 1776년 독립선언을 한 후에 헌법과 모든 정치를 민주주의로 한 것은 그들이 이미 각자 교회에서 그러한 정치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금일 대한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정치훈련을 받은 이는 기독교 신자밖에 없습니다.”   2.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오늘날의 미중 충돌을 예견했다.   1954년 7월 26일 워싱턴에서 큰 환영을 받으며 비행기를 내린 이승만 대통령은 닉슨 부통령과 악수를 하고 한국전을 지휘한 리지웨이, 밴플리트 장군과 뜨거운 포옹을 나눈 뒤 비행장에 준비된 마이크 앞에서 미리 준비했던 원고를 치우고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즉흥연설을 했다. 50년 전 ‘나라 없는 인간’으로 미국에 처음 왔을 때와 가망 없어 보이는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 시절을 돌아보는 이야기로 포문을 연 이승만은, 1950년 북한의 공산침략을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통탄했다.“미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한국을 도우러 와서 목숨을 바쳤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다. 미국이 ‘겁을 먹는 바람에(cold feet)’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우리는 후퇴해야만 했다. 조금만 용기를 더 가졌더라면 우리 두 나라는 지금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7월 28일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에서 이승만은 미국인들에게 더욱 큰 충격의 포고를 던진다. 33번의 기립박수 속에서 이어진 40여 분의 연설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중국이 힘을 키워 침략 무력을 강화하기 전에 중국 대륙을 자유세계로 탈환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절반은 자유인, 절반은 노예로 나라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인용하며 ‘중국이 공산체제로 남아 있는 한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평화는 보장할 수 없고 절반이 공산주의인 세상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의 부상과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중공의 문제를 이미 내다보고 미국국민들을 경고한 것이다. 그리고 이틀 뒤 기자회견에서는 의회연설을 보충하여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만약 중공군이 축출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구출 될 수 없다. 중국이 공산화된 채 북한과 아시아 지역이 공산당 손아귀에 놓이면 대한민국은 독립국가로, 민주국가로, 통일국가로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 미국이 지금 중공을 공격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단지 미국이 중국대륙을 [공산주의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결단을 내려야한다는 것이다. 즉, 중국본토의 해방을 미국의 궁극적 목표로 삼으라는 것이고, 그 정책을 지금 함께 강화하여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상하원합동 의회연설 당시 상원의장으로 바로 뒤에서 앉아 연설을 들었던 리처드 닉슨 부통령은 훗날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승만의 경고를 귀 담아 듣는 대신 중국에 대한 유화정책을 펼쳤고, 결국 닉슨이 스스로 우려했듯이 오늘날 중국은 자신을 경제대국으로 키워준 미국과 국제사회의 발목을 물어뜯고 있다. 닉슨은 사망하기 얼마 전인 1994년 그를 취재한 기자에게 “내가 [중국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낸 것 같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3. 한미동맹의 기본목표인 북한동포 해방과 중국 자유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직후 성명을 통해 북한동포를 해방시켜야 할 대한민국의 기본 목표를 다음과 같이 재천명했다. “당분간 공산압제 하에서 계속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우리들의 동포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요,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른 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북한의 동포들을 구출해야 할 한국 민족의 기본 목표는 계속 남아있으며 결국 성수되고야 말 것입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54년 7월,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양국 국회 비준을 통해 정식 발효되기 몇 개월 전에 미국에 가서 미국 국민의 기본 목표가 중공의 압제 하에 놓인 중국 대륙과 인민들을 구출하는 것에 있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이 목표의 달성을 도울 것이라고 미국인들에게 선언한다. “언론인 여러분, 우리가 권고하는 정책은 중국을 구출하는 결단을 빨리 내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미국 정부와 위대한 힘의 원천인 미국 국민에게 호소해 주기 바랍니다.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미국의 자유를 보전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는 세계 도처의 국민들을 지원하자는 말입니다. 미국인들이 도와준다면 우리는 반드시 공산주의 불길을 진화하겠습니다.”이어 이승만 대통령은 8월 1일, 자신이 독립외교 시절 다녔던 파운드리 감리교회(Foundry Methodist Church)에서 한미 양국이 가진 공동의 사명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섭리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힌다. “한국이 자유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북한에서] 100만 중공군을 몰아내려 한다면 원자폭탄보다 무서운 수소폭탄이 순식간에 세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겁냅니다. 그렇습니다. 끔찍한 3차 세계대전이 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에겐 수소폭탄보다 더 위력적인 무엇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손을 잡아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모두가 나를 비난해도 좋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만 저를 책망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 편에 계신지가 아니라 우리가 과연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를 물었던 링컨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공산세력에 굴복하는 것은 신앙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에 전쟁이나 죽음보다도 악한 것임을 재천명했다. 그것은 30여 년 후 ‘공산세력의 유화정책은 평화가 아니라 노예화’라고 선포하며 소련 공산권을 무너뜨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미리 엿보는 것과 같은 강한 신념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국빈 방미 후 3개월이 지난 11월 17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되었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은 아직 미완의 중대한 과업이 있음을 양국 국민 모두가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놀라운 혜안과 안목으로 한미 양국에 설정한 북한동포 해방과 중국 자유화이다.  4. 한미동맹을 북중러 독재정권들의 신냉전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가치동맹으로 발전시키자.   한미동맹이 신앙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가치동맹이므로 우리는 이를 앞으로 더욱 잘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 신앙의 공동의 가치가 잘 보전되도록 대한민국 교회는 더욱 깨어서 기도하면서 한국교회와 미국의 교회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성경적인 가치관을 실현해 나가도록 헌신해야 하겠다. 그와 함께 북한이 핵으로 무장하고 러시아와 동맹관계를 맺어나가며 중국이 공산주의를 온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중국몽을 꿈꾸며 상호협력하는 신냉전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한미동맹을 잘 발전시켜 나갈 뿐만 아니라 나토를 비롯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세계적인 모든 동맹세력들과 협력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국제평화를 지키겠다는 결단을 해야할 것이다.   5. 한국교회는 가치동맹의 원천인 신앙동맹을 지키기 위해 미국교회와 연대를 더욱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이 지난 70주년 변함없이 발전해온 바탕에는 한국기독교인과 미국기독교인들 사이의 신앙동맹이 있었다. 오늘날 한국기독교 선교와 부흥에는 미국 선교사의 기여가 절대적이었다. 오늘날 중국의 시진핑의 일인체제, 푸틴의 장기 일인체제, 김정은의 3대 세습 핵개발모험주의에 대항하여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와 신앙적 교류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가치동맹을 새롭게해야 한다. 시진핑 체제 아래서 중국교회가 박해를 받고 북한교회가 지하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와 연대하여 이들의 신앙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가치동맹을 새롭게하고 국제인권 기구를 통하여 중국과 북한, 러시아에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원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한국 자유체제의 중보자가 되기 위해 순교적 정신으로 나서야하고 자유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미국교회와 신앙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2024년 7월 25일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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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계뉴스] 공지 [최선 칼럼] 아직도 끝나지 않은 민족의 아픔 미주교회신보2024.06.21
    [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 최선 박사]    우리나라는 오천년 역사가 흐르기까지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의 전쟁으로 무고한 피를 흘렸던 그 날들을 기억한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와 절망의 끝자락에서 다시 일어섰지만 휴전 상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실체를 체험하며 살고 있다.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부터 선전포고도 없이 탱크와 전투기를 앞세운 북한군이 전면 남침을 개시하여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2일 후인 6월 27일, 침략 당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한 UN 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의로 UN군이 참전하게 되었다.UN군의 일원으로 전투참가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 물자 및 재정지원 39개국, 지원 의사 표시 3개국 등 총 63개국이 한국전쟁에 함께 했다.6.25전쟁은 핵무기만 제한된 세계3차 전쟁과 다름없는 대전 속에서 국군 62만, 유엔군 16만, 북한군 93만, 중공군 100만, 민간인 250만, 이재민 370만, 전쟁미망인 30만, 전쟁고아 10만, 이산가족 1,000만 등 당시 남북한 인구 3,000만 명의 절반이 넘는 1,90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한국전쟁 발발 후 1953년 7월 27일까지 1,129일 동안 민족상잔의 치열한 전쟁을 통해 많은 생명과 재산을 잃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나 잊혀져가는 6.25를 기억하며 참전 용사와 함께하는 6.25 격전지 탐방을 다녀왔다.1박 2일 동안 대한역사문화원 역사탐방 주최로 진행되었는데 서부전선 강화도, 김포, 연천 등의 격전지를 거쳐 중부전선의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 철원 백마고지, 노동당 당사, 철원제일교회를 방문하였다.특히 북한군과 치열하게 전투한 동부전선 강원도 양구군에서 펼쳐진 도솔산 전투를 살펴보겠다. 한국전쟁 당시 난공불락이던 도솔산(1,148M)지구전투에서 1951년 6월 4일부터 개시한 미국 해병대와 임무 교대하여 국군 해병대 제1연대가 공격을 개시하였고 17일간의 혈전 끝에 완전 탈환하였다.당시 이 작전은 한국해병대 제1연대가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암석지대를 이용한 수류탄과 중화기로 무장한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을 받게 되었다. 그 지역을 점령하고 방어하던 북한군은 제5군단 예하 제12 및 32사단 정예부대였다.그래서 우리국군은 주간 공격을 야간 공격으로 전환하였고 결사적인 작전을 감행한 끝에 6월 20일 24개고지 목표를 완전히 점령하게 되어 교착상태에 빠졌던 아군의 전선에 활로를 개척하게 되었다.대한민국 해병대는 이 작전에서 3,265명의 적을 사살한 반면 아군은 123명에 그치는 사상자를 내었다. 해병대 전통의 찬란한 금자탑을 이루는 전투였다.도솔산 전투의 승리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도솔산을 방문하여 ‘무적해병대’라는 휘호를 하사하여 지금까지 무적해병대라 불리우고 있다.자유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산하를 황폐하게 만들고 수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들이 생겨났다.전쟁은 아픔만을 남긴 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휴전 속에 수많은 세월동안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치유하기 힘든 민족의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이제는 피로써 겪은 전쟁을 소중한 문화의 에너지로 삼는 역사의 지혜가 반드시 필요한 때이다. 민족의 상처를 회복하려면 자유민주주의 의식개혁을 수반한 평화통일로 나가기 위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은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통일로 가기 위해서 남북이 힘을 합쳐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 그리고 민족의 재도약을 위한 복음통일을 반드시 이룩해야 한다.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통일의 그 날에 쓰임 받는 한국교회와 국민들이 되시기를 기대한다.   최선 박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한국문인협회 시인작가FEBC극동방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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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계뉴스] 공지 샬롬나비, 2024년 상반기 워크샵 개최 미주교회신보2024.06.14
       [기독교시민운동 샬롬나비, 2024년 상반기 워크샵 개최 사진]   샬롬나비(상임대표 김영한 박사)는 6월 14일(금)오전 9시에 샬롬나비 사무실(서울 온누리교회 양재캠퍼스 선교동 2층)에서‘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정의 역사적 의의’라는 주제로 2024년 상하반기 워크샵을 개최했다.   주제발표는 하늘교회를 담임목사이며 대한역시문화원장인 김재동 목사가 맡았다.   개회예배는 전 사무총장을 지낸 이일호 박사(칼빈대 은퇴교수) 사회로 샬롬나비 자문위원 김중석 목사(사랑교회 원로, 북한교회 바로 세우기 연합 사무총장)가 ‘절대소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최철희 선교사(시니어선교한국 고문)의 기도와 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대표, 샬롬나비 총무 최선 박사의 샬롬나비 행동강령 제창과 육호기 목사(GMS 원료선교사)의 축도로 마쳤다.   폐회예배는 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대표, 샬롬나비 총무 최선 박사의 사회로 샬롬나비 상임이사/행복발전소(하이패밀리)대표 송길원 목사께서 설교하고, 권요한 박사의 기도와 박봉규 목사의 축도로 마친 후 2024년 상반기 사업보고와 2024년 하반기 사업계획도 논의하였다.   김재동 목사는 주제 발표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강의를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지배에서 독립한 140여 개의 신생 독립국가들 중에서 한국은 139위로 가장 헐벗고 못사는 나라였다.   게다가 6,25전쟁이 지나면서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60불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이런 대한민국이 지금은 140여 개의 신생 독립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선진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처럼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되고 선진 한국이 될 수 있었던 기적의 배경에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여러 초석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 여러 초석들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한미동맹의 시작인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성사시킨 것이다.   1950년 11월 29일, 이승만 대통령은 각료회의에서 중공군의 개입에 대한 정일권 참모총장의 보고를 들은 후 “중공군이 지금 침략해 온 것은 하나님이 한국을 구하려는 방법인지 모른다”면서 다음과 같이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국지배가 소련의 계획에 들어있고 북한군의 실패가 그들 계획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지금 한국에 중공군을 끌어들인 것은 국제연합군이 철수한 뒤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보다 우리에게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가 한국에 닥칠지 모르나 민주주의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에서 중공군이 개입하는 심각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이 한국을 공산주의로부터 구할 기회를 주셨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의 예견은 적중했다. 6.25전쟁은 분명 비극적인 국가적 재앙이었으나 그 재앙은 뜻밖의 축복을 안겨다 주었다.   그것이 바로 한미동맹의 시작을 알리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다.   본 소논문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6.25전쟁에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체결과정과 정전협정 이후부터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의 마지막 단계였던 비준서 교환이 이루어졌던 1954년 11월 17일까지 1년 4개월까지의 과정을 정치와 외교의 측면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배경을 포함하여 그 역사적 의의를 고찰하였다.   발표자 김재동 목사는1. 6.25전쟁과 거제도 포로수용소 2. 스탈린의 사망과 휴전협상의 본격화 3. 포로송환의 변수, 반공포로의 출현 4.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단행 5. 정전협정 체결과 정전협정문 제4조 60항 6.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과 정식조인식 7. 제네바회담과 대한민국의 존립 위기 8.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방문의 역사적 의의 9.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한미동맹의 역사 등의 소제목으로 설명하였다.   결론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의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이 되었다고 설명하며 첫째는 1953년 8월 8일에 있었던 가조인식, 둘째는 1953년 10월 1일에 있었던 정식조인식이 있었다. 셋째는 1954년 11월 17일 한미합의의사록 합의와 한미상호방위조약 비준서 교환이 성사됨으로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무려 1년 4개월에 걸쳐 전개된 복잡한 과정을 통해 기적적으로 완성된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인 셈이라고 하였다.   실질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되기 시작되었던 시점은 그 다음 날인 1954년 11월 18일 자정부터 시작되어 올해 2024년은 한미동맹의 70주년을 맞이하는 매우 뜻깊은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동맹 70주년의 역사적 의의를 정확히 기념하고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였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한국의 안보는 한미연합사와 주한 미군과 함께 한국군이 책임을 지는 체제로 성립되었다.   그래서 1954년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군 주둔을 통해 북한의 침략을 억제하는 인계철선의 전략이 채택되었고, 그와 함께 한국군의 지휘권이 유엔군 사령부에 넘어가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현상 유지에 목표를 두고 한국 정부에 의한 북진통일의 시도도 막으면서 동시에 북한의 남침에 대한 전쟁도 봉쇄하는 이중 봉쇄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한미동맹이 가장 성공적인 동맹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동맹 목적인 ‘전쟁 방지’에 성공했으며, 동맹을 맺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세계 10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드러나듯이 그 중심에는 언제나 북한 동포들을 구출하고자 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통일에 대한 분명한 의지와 목표와 열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 된지 70주년을 맞이하는 2024년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통해 명백히 드러난 북한 구원과 통일한국의 정신을 계승하고 실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고 강조하였다.   미주교회신보 편집국장 최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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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계뉴스] 공지 보훈의 달 특집 [최선 칼럼] 독립운동가 대암 이태준 열사 미주교회신보2024.05.29
    [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 최선 박사] 우리민족과 유사한 문화와 역사적 아픔을 가지고 있는 몽골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이해하고자 몽골에 다녀왔다. 몽골 수도에 있는 울란바토르 대학교를 중심으로해서 동서남북으로 그 여정을 밟으며 문화체험을 하였다.일정 중에 울란바토르 시내 안에 조성된 ‘대암 이태준 기념공원’을 방문했었다. 공원은 울란바토르 시내를 굽어보는 자이승 전망대 앞에 있다. 이태준 열사는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의사이며 동시에 독립 운동가이다.그 당시 큰 감동을 받았기에 독자들에게 그분을 소개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야 칼럼을 통해 이태준 선생의 믿음과 신앙의 발자취를 더듬게 되었다.현재 우리나라에는 몽골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그 이유로는 지리적 인접성, 민족적 유사성, 한국의 경제성장, 한류의 영향 등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심지어 몽골인들은 한국을 '설렁거스'(무지개 나라)라고 부르며 동경하고 한국인에게 호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일제강점기 초기, 몽골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전염병 퇴치에 큰 공을 세워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린 독립운동가 이태준 열사의 헌신적 노력도 여기에 한몫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대암 이태준 선생은 1883년 11월 23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에서 태어났다. 충의와 의기가 넘쳐났던 선조를 여럿 모신 명문 가문이었지만 농촌살림은 매우 가난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가난한 농사꾼 집에 장남으로 태어난 이태준 열사는 평범한 농촌 청년이었지만 서당에서 한자를 익혔으며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갔다. 아주 부지런하고 정직한 인품을 지닌 그는 큰 꿈과 비전을 안고 거대하고 담대한 삶을 이루기 위해 농촌을 벗어나 도시로 올라왔다.무엇보다 인의를 중시하는 집안 내력을 가지고 있어 정의감이 매우 강했다. 그는 고향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서 한학을 배운 뒤 경성으로 올라와 1907년 경성세브란스 의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의학 과정을 마치고 제2회 졸업생이 되었다.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예수님을 믿고 크리스천의 삶을 실천하는 주님의 제자가 된 이태준은 당시 최고의 도시인 경성으로 올라와 열심을 다해 의학 공부를 하였다.이태준은 1910년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 치료하고 그분의 권유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외곽단체인 청년 학우회에 가입했다. 1911년 졸업 후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일제가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을 날조해 신민회원 600여 명을 검거한 이른바 '105인 사건'을 일으키자 이듬해 중국 난징으로 망명했다. 그는 민족의식을 가다듬고 중국의 남경의 생활에서 온갖 고난 끝에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게 되었다.대암 이태준 선생은 몽골 울란바토르뿐만 아니라, 몽골의 역사에서도 영웅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몽골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던 가장 무서운 전염병인 성병을 치료하고 환자를 돌보았기에 몽골인들에게 지금도 추앙을 받고 있다. 그는 병원이 안정되자 모은 재산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데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난징 기독회 의원에서 의사로 일하며 독립운동을 돕던 이태준은 몽골에 독립군 비밀군관학교를 설립하려던 사촌 처남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몽골로 건너가 고륜(지금의 울란바토르)에 '동의의국'(同義醫局)이란 병원을 개원했다.몽골에서 근대적인 의술을 펼친 그의 의료 실력은 빠르게 소문이 나 왕궁에 출입하며 왕족의 두터운 신임을 받기에 이르렀고 몽골의 마지막 왕 보그드칸 8세의 질병을 치료하는 어의가 되었으며, 1919년 7월 최고 등급의 국가훈장 에르데닌 오치르(귀중한 금강석)을 받았다.그는 몽골을 오가는 애국지사들의 연락사무소 겸 숙소로 병원을 썼다. 이태준은 김규식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파리강화회의 대표단의 파견 비용을 대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그는 레닌의 소비에트 정부가 한인사회당에 지원한 독립자금 40만 루블의 금괴 운송에도 깊이 관여했다. 이 가운데 12만 루블이 고륜에 도착하자 1차분 8만 루블은 김립이 이태준의 도움을 얻어 상하이까지 무사히 운반했다.하지만 2차분 4만 루블은 이태준이 직접 옮기려다가 러시아혁명 반대세력인 러시아 백위파 군대에 붙잡혀 처참하게 살해되는 바람에 분실되고 말았다. 그가 순국했을 때 그의 나이는 38세에 불과했다.독립 운동가 대암 이태준 열사의 삶을 짧게 더듬어 보았다. 몽골을 방문하기 전까지 이태준 선생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많은 독자들도 아마 필자와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였다.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다. 몽골의 슈바이처를 기리는 ‘이태준 기념공원’을 돌아보며 한국인을 위한 기념 공원이라서 반가웠고 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독립 운동가였으며 ‘몽골의 슈바이처’로서 생애를 마쳤다.이태준 선생은 38년의 짧은 생애동안 주님의 참된 제자로써 사랑의 의술로 진정한 생명을 존중한 삶을 살았다.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독자들과 우리 모두 하나님사랑, 영혼사랑과 나라사랑으로 애국애족의 생활을 실천하자.   최선 박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사)한국문인협회/한국문학방송 시인작가FEBC서울극동방송 칼럼니스트답장전체답장전달대규모 그룹에는 이모티콘으로 반응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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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계뉴스] 민족복음화운동본부 국회의사당 시국선언 기자회견 미주교회신보2025.03.05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한다” 국회의사당 소통관 -시국 성명서-  국민의힘, 조배숙 국회의원의 배려로 사단법인)민족복음화운동본부는 국회의사당 소통관에서 다음과 같이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하였다.    성명서 전문: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기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자 이 기자회견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우리 사단법인 민족복음화운동본부(대표총재 이태희 목사)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역사적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 앞장서 왔음을 자부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자유와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들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특히, 국민들께서 잘 알지 못했던 주사파 세력들이 국가의 안정을 저해하는 반국가적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지지하며, 헌법 제77조에 의거하여 합법적으로 국가의 위기를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대통령의 결단에 깊은 지지를 표명합니다. 이는 온 국민이 깨어나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조치라고 믿습니다.   우리 사)민족복음화운동본부는 국내외에 계신 2,300명의 회원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한국교회와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탄핵에 반대하며,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복음통일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더욱 헌신할 것을 다짐합니다.   오늘 이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하나 되어 국가의 위기 극복에 앞장설 것을 촉구하며, 국민 여러분께서도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에 동참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이날 참석자는 조배숙 국회의원과 부총재 김병호 목사, 사무총장 김익배 목사, 동문회장 양준원 목사, 사무차장 최 선 목사, 본부장 손보라 목사, 김영돈 목사가 기자회견에 동참하였다.   2025년 3월 5일   사단법인)민족복음화운동본부 대표총재 이태희 목사 외 2,300명의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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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계뉴스] [최선 박사 칼럼] 그렇지 아니한가! 미주교회신보2025.02.06
    [SBCM KOREA 대표 최선 박사]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을 대상으로 선교사역에 매진하던 그는 광고를 통하여 사람들을 모집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신문에 광고를 내고 전국적으로 신청을 받아 드디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첫 수업시간 회원들은 그의 경력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그러나 그는 할 말이 없었다.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미국 유학을 다녀 온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십 년간에 걸쳐 배우고 연마하여 누구보다 전문적인 실력을 갖추었지만 사람들은 실력보다는 간판에 집중하였다.세미나 1기 중에는 수도권에서 대형교회를 이끄는 회원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최고 대학교를 졸업한 분이었다. 그 때부터는 누가 위와 같은 질문을 하면 아, 혹시 그분 아시나요? 하면 모두가 수긍을 하게 되어 일사천리로 세미나가 진행이 될 수 있었다. 어느 총장의 제안으로 서울에 있는 모대학교에서 세미나가 진행이 되었다. 30-40명의 회원들을 이끌고 이 시대에 부응하는 실제적인 외국인 사역을 감당할 목회자를 양성하게 되었다. 기쁨의 날들이었다.그러나 몇 년이 못 되어 갑자기 총장의 퇴거 통보로 더 이상 세미나를 진행할 수 없었다. 느닷없이 다가온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무릎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다. 또 다른 대학교 총장을 만나 세미나가 가능한지 제안하였고 몇 날이 못 되어 허락이 통보되었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로 열렸다.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대학원에서 정식 석사학위과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졸업생들과 많은 외국인 사역자들을 배출하는 열매를 맺고 있다.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작든 크든 위기를 맞이한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문제를 맞이하고 해결하면 또 다른 장애들이 다가와 우리를 괴롭힌다. 마치 파도타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시련은 우리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길 바란다. 시련은 나를 훈련하여 더 성숙하고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인식하자. 어떠한 사람은 사람과 환경을 탓하고 낙심하고 원망하며 심지어 포기하기도 한다.현재의 상황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에 있었던 비상계엄선포와 입법부가 소추한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비롯한 29번의 탄핵정국이 그렇다. 건국하고 최대 위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은 국민들이 양분되어 흔들리고 있다. 다수 야당의 일방적인 예산삭감, 입법폭주와 비상계엄령과 탄핵 등 국민들은 지금의 국가 체계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인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바란다. 정확한 헌법 기준을 통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이 되기를 촉구한다. 양측 누구도 허무하게 피해를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민주화를 이룩한 우리 국민들은 인내하며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한 쪽으로 편중된 이념으로 특정 정당의 이익을 추구하지 말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건강한 시스템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의도치 않는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당연한 듯 달려가다가는 모두가 망한다. 이제는 이성을 찾고 헌법에 부응하는 국가로 반듯하게 서기를 탄원한다.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은 국난이 있을 때마다 국민들이 현명하게 대처하였고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하였다.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국가를 힘들게 했던 조선 패망 후 일제시대, 한국전쟁 등 슬픈 역사의 흔적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대한민국의 힘이 되지 않았던가!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자. 그리고 서로 서로 위로와 격려를 통하여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여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자. 남녀노소가 행복한 일상을 열고 대한민국 미래의 비전과 꿈을 이루는 터전으로 만들어 가자. 국민들이여 그렇지 아니한가!   최선 박사(Ph.D., Th.D.)OCU대학교 교수SBCM KORE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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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계뉴스] [최선 교수 칼럼]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 미주교회신보2024.12.07
    [SBCM KOREA 총재 최선 박사] 대한민국의 정국은 하루가 다르게 불투명하다. 다수당인 야당은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 기간동안 정쟁화 하였고 정례적으로 다루어졌던 행정부, 사법부, 국방, 민생 등의 예산을 대폭적으로 삭감하였다. 입법부에 관한 예산만 제외한 채 최소한의 국가 경영을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갔다. 이것은 진영논리에 빠져 편파적인 입법권 남용으로 빚어낸 결과였다.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로 온 국민은 혼돈에 빠졌다. 비상계엄 시작부터 해제까지의 6시간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국회와 국가기관 그리고 곳곳에서 탄식과 대혼란의 사태가 빚어졌다. 일부 국민들의 원망이 번져 촛불 비상시국 선언과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치기 시작하였다.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전 세계인들이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서도 슬기롭고 지혜롭게 헤쳐 나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대통령실과 여권 관계자들은 헌법 수호와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을 최대한 살리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야 한다.또한 지난 정권부터 수사가 시작되었고 여전히 초유의 사태인 김건희 여사 특검으로 인하여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으로서 곤란한 지경이었다. 그러한 중에 45년 만에 선포한 비상계엄령 의 후폭풍으로 인하여 국민들은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라졌다. 이제부터라도 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깨끗하게 매듭을 짓고 새롭게 출발하기를 기대한다.그리고 대통령은 더 이상 국가를 수렁으로 빠뜨리는 결정을 하지 말아야한다. 물론 야권에서도 일방적인 주도권으로 행정부 마비와 같은 예산 삭감과 같은 잘못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느 특정한 진영의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다. 좌와 우 모두 자유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협력하여 건강한 조국을 건설하는데 일조하기를 바란다.  12월 7일 토요일에는 김건희 여사 특별법 부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가 불성립되었다. 하지만 여권 인사와 정부 관계자들은 특검법과 탄핵안 불발에 안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회적인 승리이다. 야권은 상시 특검법으로 몰아 그들이 원하는 목적이 통과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상정할 것이고 대통령 탄핵 역시 그렇게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위기의 정국 해법은 어떻게 할 것인가? 대통령과 여야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정확한 시선에서 물어 보아야한다. 그리고 현 시국 상황은 근시안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중진들과 소장파 인사들에게도 지혜를 찾아야 한다. 대통령도 깊이 있는 반성과 국민이 희망을 가지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또한 야당은 지금처럼 강하게 밀어붙이고 무조건 탄핵만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입장을 바꿔 보는 역지사지의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야권도 국정을 책임지는 여권이 될 수 있으니 정상적인 국정을 이끄는 동반자의 자세로 양보하고 서로 협력하기를 바란다.국민들은 거짓 선전, 선동에 동요되지 말자. 정확한 팩트 체크에 입각한 뉴스가 아닌 것은 걸러 내어 가짜 언론에 현혹되지 말고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직무를 다하자. 그리고 정국해법에 분명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는 인내를 가지자. 아울러 한국교회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기도하자. 분열과 불신의 자세를 버리고 믿음과 행함의 모습으로 바르게 살지 못한 처신에 대하여 회개와 각성의 자세를 갖자.칠흑 같은 밤의 시간도 태양이 뜨면 낮이 오듯 현재의 국가적인 위기에도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반드시 지켜주실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대한민국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저력이 있다. 먼저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선행되어야 하고, 여야국회의원들과 행정부에서 납득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여 안정과 발전의 기회로 삼자. 대한민국 국민들이 더 이상 정쟁으로 정치권을 걱정하지 않도록 조속한 해결을 소망한다.     최선 박사(Ph.D., Th.D.)SBCM KOREA 총재OCU대학교 교수, 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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