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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그림이 있는 성서 에세이5/가버나움의 빈들

작성일 :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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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황학만 목사

  《씨앗이 담긴 컵 2008. 황학만 作》   



귀에 익은 ‘가버나움’-. 오천 명이 앉아 식사를 하고도 남을 만큼 넓은 언덕진 그곳은 갈릴리호수 북쪽에 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山上垂訓)을 설파하셨던 자리에는 팔복예배당이 자리하고 있고,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나부끼는 루비 빛 꽃들은 그곳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천국복음을 상기케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예수께서는 가난했던 그들에게 천국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배부르지 못하는 이들의 것이라고 외치셨다. 


예루살렘터미널에서 갈릴리 행 버스를 타면 호수 남서쪽 ‘디베랴’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여객선을 타면 호수를 빗겨 질러 ‘가버나움’으로 가게 된다. 파도를 헤치고 가는 배를 뒤따르는 갈매기 떼 울음소리가 마치 사도들이 떠드는 소리인 듯 들린다. 삼킬 것 같은 파도에 놀라서 잠든 스승을 깨우거나, 물 위로 걸어오시는 스승에 놀라는 제자들의 소란, 그리고 그 호수를 ‘바다’라 부르며 고기 잡던 제자들의 떠드는 소리다. 


디베랴마을에서는 ‘디베랴 바다’라고 부르고, 긴네렛 마을에서는 ‘긴네렛’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갈릴리호수는 그들에게 정녕 바다였다. 그곳은 장차 제자들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한 수련장이었다는 듯이 때로는 폭우가 몰아치고 성난 파도가 요동하기도 한다. 호수의 동쪽에 ‘거라사’, 북동쪽에 ‘벳새다’, 북쪽에 ‘가버나움’, 그 윗마을 ‘고라신’, 서쪽에 ‘디베랴’, ‘막달라’ 거기서 몇 개의 언덕 너머 ‘가나’와, 그 너머 아래 외딴마을이 ‘나사렛’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외면하시고, 헐벗고 가난한 갈릴리사람들에게 천국설파와 표적(表迹)을 보여 천국의 실상을 알리셨다. 그러나 빚어진 결과는 비통한 절규였다. 


“화 있으리라 ‘고라신’아-! 화 있으리라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까지 낮아지리라. 심판 날에 ‘소돔’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그럼에도 그들 곁을 떠나지 않으신 까닭은, 그들 넘어오고 오는 세대에도 그 천국을 알리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의 귓전에도 그때 그 이야기가 들리는 것이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져서 싹이 났으나 해가 돋은 후에 뿌리가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졌으나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 결실하게 되었지.”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지구 뒤편에서도 그곳을 성지라 부르며 순례 길을 떠나더니, 시대가 급변했다. 그새 상대적 빈곤이라는 허상이 밀고 들어와 굶주린 이들을 내몬 것이다. 천국이 저들의 소유라면, 정작 가난한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허공에 산화한 그 말씀은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 밭을 찾는데, 상대적 빈곤을 가난이라 하는 세대에 산상수훈은 도대체 어디에 떨어졌을까?


어쩌면 우리가 부유한 나머지 부족한 것이 없다는 ‘라오디아교회’였는지도 몰라 귀를 기울이게 된다. “네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17, 20) 또다시 옥토를 찾는 씨앗, 오늘도 여전히 그 가버나움 허허로운 빈들이다. 



(출처 한국교회신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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